어느 연쇄살인범의 초상… 악인전
어느 연쇄살인범의 초상… 악인전
  • 백정우
  • 승인 2019.06.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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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
영화 악인전의 한 장면.

 

백정우의 줌인아웃... 악인전 


각설하고, ‘악인전’의 주인공으로 사이코패스를 내세웠다는 다수 의견에 반대한다. 요컨대 감독이 연출한 연쇄살인마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은 살인자’이다.

오프닝 시퀀스. 김성규는 앞차를 들이받아 고의적으로 접촉사고를 낸다. 앞차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 칼을 무차별로 휘둘러 사람을 죽인다. 핵심은 여기서부터다. 범행현장을 벗어나기 위한 다음 행동을 주목해야 한다. 김성규는 핸들을 오른쪽이 아니라 반대 차선이 있는 왼쪽으로 꺾는다. 이는 안정감을 잃어버린 인간이 위기상황에서 자기보호를 위한 무의식적 심리기제가 발로한 행위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보이는 행동 패턴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사이코패스는 다르냐고? 당연히 다르다.

조성희 감독 ‘남매의 집’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예측불허인 그의 행동에서 눈에 띈 것은 해머를 쥔 오른 손이었다. 어린 남매를 주시하며 금방이라도 내리칠 것 같은 손. 보통의 경우 (관객에게 등을 돌린 위치에서) 해머를 쥔 오른손은 당연히 손날이나 손등이 보여야 맞다. 그런데 지나치게 꽉 쥔 손가락이 보인다. 거꾸로 잡은 것이다. 이렇게 잡을 경우 내려칠 수가 없다. 뒤집힌 손은 연출의 결과였을까? 당연히 연출이고,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하기 위한 장치이다. 감독은 친숙하면서 낯선 장면이 불러오는 공포를 통해 남자가 사이코패스임을 알린다. 관객은 생각한다. 저 정도 미친놈이라면 기어이 아이 머리를 박살내고도 남을 거라고.

다른 한 장면. 풀밭에 쓰러진 피살자 모습에 이어지는 건 카페에서 담뱃불 끄는 손이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카페여급을 칭찬하고 셈을 치른 후 차에 올라타는 헨리. 다음에 오는 숏은 피 흘리며 쓰러진 카페여급(방금 전 칭찬 들은). 살해 장면과 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숏과 숏으로 이어지는 살인의 지속.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영화가 시작되고 단 5분 이내 5건의 연쇄살인을 묘사한다. 물론 이후에도 살인행각은 계속되고 살해 무기도, 방법도 모두 다르다. 사이코패스라면, 사이코패스를 묘사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한편 “애 생일이 대수냐”던 트럭기사에게 칼질한 후 “애가 무슨 죄야”라고 이죽거리며 트럭기사 차에 올라탄 김성규는 옆 좌석에 실린 아이 생일 케이크를 보고는 흠칫한다. 뒤이어 정신 나간 웃음을 지으며 케이크를 먹는 김성규. 이 장면만으로 흠칫 놀라는 모습을 상쇄하여 사이코패스라 정의내릴 수 있을까. 같은 감옥에 들어오는 마동석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목욕탕에서 최후 일전을 앞둔 순간 흔들리는 표정은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나약한 인간에 가깝다. 그러니까 감독이 디렉팅한 김성규는 살인이 일상이 된 인명경시를 보여줌으로써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은 연쇄살인자를 설명할 뿐이다.

로빈 우드에 따르면 ‘히치콕의 위대함은 인간 심성에 악마성이 들어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악인전’은 일상이 된 살인의 촉발을 통해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은 연쇄살인마에 관한 친절하고 세심한 설명서이다. 그리하여 겁에 질린 연쇄살인범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fade out.

 

백정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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