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鎭魂)의 예(禮)
진혼(鎭魂)의 예(禮)
  • 승인 2019.06.0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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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상식(常識)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해력과 판단력을 일컫는다. 광의의 상식은 일반적인 지식까지도 아우른다. 특별한 사람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두고 ‘상식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상식은 누구나 알만한 기본적인 이해라고 볼 수도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균형을 이루는 힘은 ‘상식’이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기능들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의무다. 그래서 상식적인 질서가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를 믿고, 국민은 국가를 믿고 사회 활동에 전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믿음에 균열이 가면 위험해진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에 침몰하던 세월호를 TV로 지켜보면서 ‘저렇게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뉴스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모두 구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이었으니까 말이다. 선체가 점점 가라앉으면서 ‘설마’하는 마음이 들었고, 결국 이 사고로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의 죽음을 확인하면서, 국가에 대한 믿음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두 눈을 뻔히 뜨고도 지킬 수 없었던 생명들에 대한 죗값은 피해갈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맛’을 잃어버린 국민들의 우울증은 한동안 내수시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17일 오후 5시 17분쯤,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한 호텔 6층 실내수영장에서 이기백군이 수영장 철제계단 사이에 왼쪽 팔이 끼인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 당시 이군은 의식이 없었으며,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00일 동안 치료를 받아왔지만, 이군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잠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군의 부모는 눈 앞에서 점점 악화돼 가는 아들을 이대로 보내는 것보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장기기증을 선택했다고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전했다. 이군은 6개월 전부터 이 호텔 수영장에 다니며 주말마다 강습을 받았다고 한다. 이날도 이군은 수영강습을 받으러 수영장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 2007년 부산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군은 착하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다. 교우관계도 좋아서 부모는 물론 주변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학생이었다. 이군은 지난 3월 중학교에 입학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교복을 입어보지도 못하고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지난 6일 부산 추모공원에 안치되기 직전, 이군에게 중학교 교복을 입혀서 떠나보내며 어머니는 오열하고 말았다. 이군 부모는 “12살의 어린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가족에게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기백이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면서 “100일 동안이나 기다려준 기백이가 어디선가 살아 숨쉬길 희망하기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양쪽 신장과 간장 등의 장기를 3명에게 기증하기까지 부모에게는 얼마나 생살을 찢기는 결정이었겠는가. 이군 부모는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아픔과 고통 속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런 사실이 많이 알려져 앞으로는 다른 누구도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수영장 내 폐쇄회로 영상을 분석하고 현장에 있던 안전요원을 상대로 과실 여부를 수사했다. 결국 수영장 안전요원 배치기준 위반과 관리감독에 대한 주의 의무 위반 등의 혐의로 해당 호텔 사장과 총지배인, 수영장 관리자 등 총 6명을 불구속 입건했고 보완 수사를 거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비단 그들만의 문제겠는가. 전국적으로 안전의식이 필수적인 각종 놀이시설이나 생활체육시설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노후시설의 점검과 교체는 물론이고, 안전요원들의 의식 교육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는 여전히 비상식적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앞장서서 법을 어기고 있다. 여야 어느 쪽에게 더 귀책사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하지 않는’ 그들은 국민들의 혈세를 들여 그들의 ‘생색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누구를 위한 투쟁이고,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 그들의 상식은 무엇인가. 국회정상화 협상도 패스트트랙에 관한 이해차가 커 여의치 않아 보인다. 언제쯤 이전투구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지 유감스럽다. 국민의 공감대를 이루는 심지에는 여전히 상식이 자리하고 있다. 혹자는 온 국민에게 아픔으로 남은 세월호 사고와 일제강점기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발전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유가족 보상이나 추모행사의 비용 등을 두고 ‘예산낭비’라고 뒷담을 나누는 무리들도 보았다.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되는 비용은 얼마나 ‘합리적인 예산’에 근거하는지 알 수 없지만, 국민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진실의 은폐, 왜곡을 멈추고 진정한 반성과 대안을 마련해야만 국가의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것이 상식일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떠난 혼(魂)들에 대한 예의다. 살아남은 자들만의 ‘살 궁리’만이 아닌 진혼(鎭魂)의 예를 다하는 것도 동녘의 예의바른 국가의 격을 높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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