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박정희가 만났을까
이승만과 박정희가 만났을까
  • 승인 2019.06.1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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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미국의 CIA는 한국의 국정원 모델이다. 국내정보는 물론 해외정보까지 샅샅이 수집하여 국내정치와 국제외교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국정원은 중앙정보부로 시작해 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다가 현재의 국가정보원이 되었지만 군사독재 30여 년 동안 무수한 민주인사들이 고문을 받고 죽기까지 했던 ‘악의 소굴’로 치를 떨게 했다. 미 CIA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해외에서의 활동이 유난히 많다. 수교 국가는 물론 비수교국에도 비밀리에 파견된 요원들이 정보를 빼온다. 일제강점 36년을 견디며 독립을 쟁취한 한국은 남북분단이라는 사상대결과 6·25전쟁을 겪으며 가장 치열한 동서 양진영의 스파이전이 벌어졌던 곳이며 신생 한국에 파견된 미국중앙정보국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 중에서도 미 육군 중령으로 CIA문정관이었던 케네스 앨프리드 캠팬(Kenneth Alfred Campen)의 존재는 두드러진 면이 있다. 정보요원의 특성상 전면에 등장한 일은 별로 없지만 한국어와 일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비선 활동가로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한 것은 현대사 연구자들의 관심꺼리가 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암호해독 정보장교였으며 중공군의 저지를 위해서 만주에 원폭을 투하해야 한다고 맥아더사령부에 제의했지만 트루만대통령이 거부하는 통에 3년이라는 긴 전쟁을 치르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다음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정전협정이 맺어져 지금까지 분단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캠팬은 전쟁이 끝나고 이승만의 정치파동 발췌개헌 삼선개헌 등이 이어지며 3·15부정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이 쫓겨나는 등 숨 가쁜 정치역정을 모두 보게 되며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할 때까지 한국정치사의 이면을 낱낱이 목격한다. 그가 CIA를 은퇴한 것이 이 때쯤일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1961년 11월 5·16쿠데타 6개월 후 박정희는 미국 케네디대통령과 면담하기 위하여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워싱턴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정보국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하자 여순반란사건 등에 관련해 사형언도를 받았던 전력을 문제 삼아 그를 공산주의자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박정희는 혁명공약에서 “반공을 제일의로” 내세웠지만 미국조야의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이 의구심을 풀어준 게 CIA한국지부의 보고서다. 캠팬이 주도한 보고서는 ‘신뢰할만한 보수적 민족주의자’였다. 케네디와의 회담에서 캠팬은 통역을 맡았는데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어 박정희와 케네디 양자의 통역을 모두 했는지도 모르겠다. 면담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1952년 이집트 나세르가 왕정을 전복하고 이슬람민족주의를 내세웠으며, 1959년에는 미국의 코 밑에 있는 쿠바 카스트로가 쿠데타로 반미정권을 세우는 등 미국으로서는 껄끄러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때여서 박정희도 색안경 반경에 들었던 처지였다.

케네디는 박정희를 면담한 후 의구심을 풀었으며 박정희는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귀국 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박정희는 도미 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여독을 풀 겸 천혜의 휴양지로 알려진 하와이에 들린다. 하와이에는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이 허정 과도정부의 배려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승만이 고국을 등진 것은 1960년 4월 29일이니까 1961년 11월말이면 1년 반 정도 망명생활을 하며 노쇠한 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는 하와이 군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박정희는 이승만정권 하에서 별을 달았기 때문에 아마 구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인연으로 박정희는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이승만을 찾아간다. 캠팬은 두 사람의 면담 자리에 동석한다.

두 사람은 정치적인 화제는 거론하지 않으면서 이승만 건강 얘기로 꽃을 피웠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반가워 한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집권한 장면정부를 타도한 박정희가 자기를 대신하여 복수를 해준 인물쯤으로 반겼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승만과 박정희의 만남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밝히지 않았던 비밀이다. 오직 증언자는 캠팬 한 사람뿐이다. 여기서 나는 캠팬의 진술이 과연 진실일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가 아무리 입단속을 시켰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집권자가 움직이면 엄청나게 많은 수행원이 따라가는 것이며 더 많은 경호원이 붙는다. 더구나 두 지도자가 만나는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역사적인 문제를 증언하는 사람은 언제나 과장 과시 미화에 대한 강한 자제심을 가져야 한다. 캠팬의 증언만으로는 꼭 만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당시 수행자들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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