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를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보다.
용서할 수 없음에 뜬눈의 밤이 길고
나처럼 일어나서
불을 켜는 사람이 있나 보다.
즐펀히 젖어 있는 창문께로 가서
목늘여 달빛을 들여마시면
태기처럼 퍼지는
가까운 기별.
나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 보다.
그의 눈물에 왼종일 날이 궂고
바람은 헝클어진 산발로 우나 보다.
그래서 사시철 내 마음이 춥고
바람결 소식에도 귀가 시린가 보다.
◇이향아= 1938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년도에 전주기술전문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66년에 현대문학에 찻길, 가을은, 설경으로 등단을 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기전여고 재직 당시부터 최명희를 가르쳤으며, 추후 작가로 키우고 돌봐주었다. 서울 서대문중학교(1972), 성동여자고등학교(1976), 영등포여자고등학교(1981) 교사로 교단에 섰다. 1983년에는 본교인 경희대학교로 돌아가 강사로 활동한 뒤에 198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한 생명을 스러지고, 어느 국가가 국가를 침범하고, 지구 반대편에선 때 아닌 여름 더위에 허덕거리며 산다. 나도 모를 사이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마음 한편은 마냥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안타깝다. 그런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을 좀 더 순수하게 만든다. 하루 한 번 이상 나를 되돌아보면 다음 날 아침은 얼마나 더 신선할까? 나를 보는 연습을 하며 살자. 그것이 참 인생이다. -김부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