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벽(四壁)의 대화
사벽(四壁)의 대화
  • 승인 2019.06.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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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이 책은 강원도 정선 깊은 산중의 토굴 ‘심적(深寂)’에서 지허스님이 한 시절 수행한 것을 바탕으로 한 토굴일기다. 이야기는 심우스님이 수행하는 ‘심적’에 지허스님이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는 동안 심우당과 지허당 두 사람이 토굴에서 계절을 나기위해 최소한의 먹거리를 구하는 노동과 진리에 대한 깊은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수행일기는 단조로우면서도 치열하다. 그리고 빛나는 언어로 가득하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선은 다투어 행하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선은 다투어 외면”하는 인간의 위선을 지적하며 “어떠한 고(苦)가 오더라도 고의 끝에 달고 오는 것이 선이라면 끝까지 용기로워 지면서 바보처럼 묵묵히 감내”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아름다운 대화 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청빈이 아니라 극빈의 토굴 생활을 노동으로 이어가는 그들의 수행 방법이다.

산중 생활을 하는 그들이 먹는 양식은 꿀밤과 무 그리고 소금이 전부다. 조반을 끝내고 꿀밤 솥에 불을 지피고 나무하러간다. 고사목만 채취하기에 한 낮이 되어서야 겨우 한 짐 할 수 있다. 점심 먹고 꿀밤 솥에 물을 갈고 또 나무하러 간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어두움 속에서 꿀밤을 깐다. 이렇게 한 끼 먹거리를 위해 온종일 노동을 한다. 토굴 생활은 아무런 제약이 없어 투철함이 없이는 오히려 타락하기 쉽다. 그들은 매일 일정하게 노동을 하며 자신을 단단히 얽어매고 있다.

그럼 공부는 언제하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게 보통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의 생각이다. 지허스님이 심적에 오기 전 어느 수좌가 심우당을 찾았다. 그는 심우와 달리 쌀로 밥을 해 먹고 토굴을 정결히 하고 도배까지 했다. 그리고 열흘이나 걸려 장작을 잔뜩 해놓고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나흘 째 되던 날 짐을 꾸려 “새로 산 신발만 다 낡았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났다.

비록 욕망을 완전히 탈피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외면이라도 해보려고 스스로 울타리를 쳤다. 욕망이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였다. 범부가 고뇌 속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소이는 자기 자신에겐 언제나 관대하기 때문이다. 구도자는 자신에게 언제나 냉혹하여 과오를 범할 때마다 가차 없이 스스로를 난도질해야 한다는 그들은 견성하기 위해 입으로만이 아니라 온몸을 다해 정진한다. 오늘날 온갖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프고도 부끄럽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이 책은 오랜 시간 동면에 들었다가 몇 해 전 보완 작업을 거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심우당이 깨달음을 얻은 뒤 “인간의 비극을 종식 시킬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근로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산해서 처음 한 일은 심적 아래 60대 화전민 노부부와 함께 살며 그들을 돕는 것이었다. 세상의 보다 큰 슬프고 외로운 그림자보다 노부부의 조그마한 그림자를 지워주고자 함이었다. 이처럼 이 책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웅변한다.

구도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수행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종착역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길을 틀지 않고 나아간다. 무대 위의 예술가들 역시 그러하다. 그들은 자신의 예술을 위하여 치열하게 정진한다. “해도 늘지 않지만 안하면 줄어드는 것은 확실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술의 성취는 어렵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그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아티스트들은 그야말로 밤을 밝힌다.

이 책을 발행한 스님께선 “이 글을 처음 대했을 때 엉엉 소리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 말씀 하신다. 글에 배어 있는 수행자의 다함없는 진정성과 쇠라도 녹일 뜨거운 구도열, 자신에게 몹시 엄격한 수행의 자세에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다. 그만큼 이 책은 특별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욕심내지 않고 기쁘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바로 서고자 노력하는 사람. 이 책을 읽노라면 이런 사람들이 생각난다.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들의 일기인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가끔씩이라도 다시 끄집어내서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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