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근원으로 …‘一’ 추상서예를 말하다
다시 근원으로 …‘一’ 추상서예를 말하다
  • 황인옥
  • 승인 2019.06.13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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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노상동展…네앙 25갤러리
전통과 현대 소통지점 탐구
면 추상작품 10여점 소개
서예정신의 근원 ‘一’ 주목
점·획 깨뜨리고 모으며
동양적 정신 실체 파헤쳐
노상동작1-2
노상동 작.

 

 

 

하나의 면이 화선지를 한가득 포용한다. 서예가 노상동의 작품인데,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을 떠올리게 한다. 공통분모인 ‘면’에 주목할 경우 그렇다. 작가 역시도 “서양의 외형으로 표현한 추상”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점, 선, 면이라는 서양 회화의 요소로 표현한 동양추상이에요.”

면을 먼저 보았다면 이번에는 선과 색을 볼 차례다. 그의 면은 무한대의 색인 먹색으로 한일자를 세로로 이어 써서 만든 선의 확장으로서의 면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근원 회귀적인 태도’가 숨어있다. 현상계가 아닌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다. ‘색면 추상’이라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마크 로스코가 거대한 캔버스에 스며든 모호한 경계의 색채 덩어리의 면들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표현했다면 노상동의 면은 좀 더 근원으로 파고든다는 의미다.

“저의 ‘면 추상’은 서예의 ‘쓴다’는 형식 대신 그림의 ‘그린다’는 형식으로 변한 것 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예가 가졌던 지극한 추상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추상서예로 전통서예 재해석 시도

추상서예가 천수(千樹) 노상동 개인전이 네앙 25갤러리(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킹덤오피스텔 1210호)에서 열린다. 전시는 그동안 서예인들의 사랑방으로 활용됐던 공간을 갤러리로 꾸미고 여는 개관전이자 노상동이 ‘면 추상’을 선보이는 첫 전시다. 전시에는 먹으로 표현한 ‘면 추상’ 10여점을 소개한다.

전통이라는 말이 붙으면 고루하다는 선입견부터 가지고 달려든다. 이러한 인식이 현대인과 전통이라 이름 붙여진 분야들과의 소통을 가로막아왔고, 전통을 토대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과제이자 고뇌로 자리매김 했다. 서예가 노상동이 지난 20여년간 ‘추상서예’에 천착해 온 배경에 이 같은 쓴 현실이 자리한다. 그는 서예의 정신성은 고수하면서 현대인의 미감으로 승화된 자신만의 ‘추상서예’를 추구하며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고 있다.

그가 “서예에는 선비정신의 정수가 깃들어 있는데 현대에 와서 이 정신은 빠지고 여백과 붓글씨로만 소통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진단했다. “저는 서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현대인들과 과거가 아닌 현재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고도의 정신성을 예술로 녹여낸 서예. 그 정신성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노상동은 서예가 기반으로 하는 ‘한자’라는 문자에 주목했다. 뜻을 전달하는 문자의 정체성이 서예에 오롯이 관통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자의 출발선은 상형문자였다. 동물이나 사물, 신체의 모습을 본 따 만든 문자였다. 초기 한자의 시각적 이미지는 극도로 단순화한 추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에 의미전달이라는 문자의 속성이 강해지면서 기호화의 길을 걸어왔고, 추상으로 출발한 한자는 극강의 구상으로 변모했다.

“서예가 추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문자화로 가면서 서양보다 더 극구상이 됐어요. 이제 다시 서예의 초기 추상을 밝혀 현대인과 소통지점을 찾아야죠.”

◇ 한일(一)자의 파서(破書)와 적서(積書)로 추상의 회귀 시도

노상동이 서예의 현대화를 고민하면서 구사한 태도는 회귀(回歸). 문자 발명 초기의 추상성을 현대서예에 재발견하는 태도를 견지해 전통서예의 정신성과 점, 선, 면으로 대변되는 현대 미술의 회화적 미감(美感)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 이른바 ‘추상서예’의 탐구였다. 이 시기 그가 ‘추상서예’의 출발선으로 삼은 것은 한일(一)자다. ‘모든 획의 기본’이라는 근원성에 주목해 한일자 탐구를 시작했다.

“한일자는 위로 하늘, 아래로 땅, 그 중간인 인간인 ‘천·지·인(天·地·人)’ 모두 포함하는 유일한 글자에요. 조형적으로도 문자이면서 선과 면의 경계에 있죠. 한일자야말로 대우주의 대변하지요.”

추상서예 탐구 초기에 구사한 방법론은 ‘파서(破書)’였다. “한일자를 점과 획으로 깨트리며 문자의 근원이자 기본으로 탐구”해 갔고 파서의 끝에서 점(·)을 만났다. 한일자를 세워놓고 위에서 내려다 본 결과였다. “점(·)은 극강의 추상이자 서양회화의 조형요소였죠.” 다음으로 구사한 방법은 ‘적서(積書)’. 쪼개놓은 점을 다시 한 화면에 집적해 나갔다. 물감을 뿌려 올린 잭슨 폴록이나 색을 층층이 올린 마크 로스코의 색면처럼 파서를 층층이 쌓아가며 비가시적인 수직적 공간을 형성했다. “전체에서 부속으로 분리했다가 그 부속이 다시 전체로 되는 과정을 거치며 서예추상의 실체를 파헤쳐갔어요.”

◇파서와 적서의 완결은 면(面)으로

이번 전시 제목은 ‘강설착지((降雪着地)’. 눈이 하늘에서 내려 땅과 만나는 순간을 의미한다. ‘천·지·인(天·地·人)’ 모두를 포함하는 한일자의 의미와 일맥상통하기도 하지만 파서와 적서를 면이라는 서양적인 조형 방식으로 수렴한 신작의 회귀적인 정신이 포함된 결과이기도 하다.

“서예의 가장 핵심은 문기(文氣)에요. 정신성이 먹으로 드러나는 것이죠. 그러나 획 하나만으로 그것을 실현하기에 시대가 달라졌죠. 그래서 문기의 현실화의 방법론으로 면이라는 미술적 표현법을 구사하게 됐어요.”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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