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사자 명예훼손죄와 조의제문 (弔義帝文)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사자 명예훼손죄와 조의제문 (弔義帝文)
  • 승인 2019.06.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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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대구 형사전문변호사
대구 부동산전문변호사
형법에 의하면 일반 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형, 그 내용이 허위일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출판물 등을 이용한 명예훼손죄는 가중되어 3년 이하의 징역형, 그 내용이 허위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이와 같이 일반 명예훼손죄와 허위 내용의 출판물을 이용한 명예훼손죄는 형량에 큰 차이가 있는바, 이유는 피해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고 출판물은 후대에도 계속 존재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명예훼손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허위의 사실로 사망한 자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에도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허위 내용의 출판물에 의하여 생존하는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최고 7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으나 동일한 행위를 사망한 자를 상대로 하였다면 2년의 형으로 많은 차이가 난다. 망인은 명예훼손행위에 대한 정신적인 피해를 느낄 수 없고 후손이 명예훼손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행위가 수백 년간 지속되어 지금도 망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국사교과서 사림파 계보도를 보면 ‘정몽주 - 길재 - 김숙자 - 김종직’의 순으로 연결되어 이후 번성하게 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김종직(호 점필재)은 제자들이 활발하게 관직에 진출하고 학문적으로 많은 업적을 쌓게 되어 사림의 조상격으로 확실히 인정되었다. 김숙자는 김종직의 아버지이고 그 스승이 정몽주, 길재이므로 자연히 절의파와 연결되지만 김종직은 정몽주나 길재에게 수학한 적이 없고 조선 개국이나 세조 집권과는 무관하므로 절의파와 학문적으로 연결되고 이들의 학풍은 계승하였을지언정 단종에 대한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하여 절의를 지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실제의 이념도 당대의 군왕에게 충성하고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므로 세조를 비난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세조대에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관직에 나갔고, 관직을 크게 탐하지 않았으며(주로 부모 봉양 등을 위하여 서울이 아닌 지방 관직을 선호하였고 학문적 성과 등으로 자연스럽게 판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의 유림의 일반적인 입장에 따라 불교의 허례허식 폐해를 줄이기 위하여 주자가례 등에 따른 장제문화 보급에 앞장섰다(현재 기준으로 이러한 장제문화가 허례허식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숭유억불의 정책을 추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영향력으로 많은 양반 및 평민들이 불교식 장제방식에 따라 많은 재화와 시간을 낭비하므로 불교식 보다 훨씬 검소한 유교식 장제문화를 보급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김종직은 젊은 시절 출사 전에 조의제문이라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고, 그 내용은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의제(義帝)를 조상한다는 제문이다. 김종직 본인은 어디에서도 위 글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꼰 세조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내용이다’라고 표현하거나 말한 적이 없고, 무오사화 이전에 그러한 뜻으로 해석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연산군 시절 김일손이 사초에 ‘조의제문’을 표시하였고 당시 사림의 정계진출 및 이들과 다툼이 있던 유자광 등이 연산군에게 ‘조의제문이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이다’라고 하여 무오사화가 발생하였으며, 약 보름간의 추국이 진행되어 고문에 못이긴 일부 신료들이 하는 수 없이 ‘조의제문은 세조왕위 찬탈을 풍자한 글이 맞다’라고 허위 자백하여 김종직은 부관참시(송장에 대하여 다시 사형을 집행하는 절차) 되고 많은 관련자들이 극형 및 삭탈관직 당하였다. 이후 중종반정을 통하여 김종직 이하 관련자들이 복권되었지만 무오사화 과정에서 왜곡된 조의제문의 의미(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글)는 후대에도 무오사화 당시의 관점으로 계속 해석되었다. 그 결과 허균은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작성하였음에도 세조시절 벼슬을 한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라고 비난하였고, 지금도 인터넷에 ‘조의제문’을 검색하면 ‘세조의 왕위찬탈을 은유적으로 비난한 글’이라고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이 허위 내용의 출판물(무오사화 당시에 작성된 각종 서적 등)에 의하여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조의제문의 의미 및 김종직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고 있으므로 허위내용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행위가 일반 명예훼손행위에 비하여 엄벌할 필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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