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忍冬)의 꽃
인동(忍冬)의 꽃
  • 승인 2019.06.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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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인동초는 약재로 쓰이는 덩굴식물이다. 그 꽃은 금은화(金銀花)라고 하는데, 이 꽃이 완전히 백색이나 은색일 때 수확하는 것이 가장 약효가 뛰어나다고 전해진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풀, ‘인동초’라 불리던 사내가 있었다. 폭설과 한파를 견뎌내고 다시 싹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은,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가 바로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이다. 그가 야당의 총재를 맡았던 시기에 광주민주화운동 묘역에 방문했을 당시 “나는 혹독했던 정치에서 겨울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 합니다”라고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납치, 투옥, 사형선고, 망명을 겪었다. 이는 이겨냈다기보다는 견뎌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대통령 재임당시의 과오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어느 정권인들 과오가 없었던가. 정치판에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물며 역사 속의 인물들 그 누구도 ‘실수’와 ‘실패’를 겪지 않은 예는 드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덩굴 그대로의 풀이었다면 그 꽃에 비견할 여인이 이희호였다.

그녀는 이화여대, 서울대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었다. 게다가 의사집안이라는 유복한 환경이었으니, 요즘 말로 ‘엄친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불평등이 상존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녀는 분명 신지식인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운명적으로 한 사내를 만났다. 최우수 성적으로 목포상고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자유당이 득세하던 살벌한 시절에 야당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정치판에서 전 재산을 탕진했고, 아내와 사별했을 뿐만 아니라 중학생 아들 둘을 둔 홀아비였다. 그런 그와 그런 그녀를 소개한 것은 강원룡 목사였다. 그들을 소개한 강목사의 용기는 무모해보였다. 이 시기에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잔혹한 일화들로 뒷담을 나누었다. 그 모든 루머들이 사실이건 아니건, 두 사람의 결혼 이후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라. 어떤 여성이라도, 그녀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라고 하면, 과연 살아낼 수 있을지 말이다.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암울했던 정치적인 상황에서 그녀의 동지애가 없었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김대중은 야심찬 한 정치인에 불과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정치와 문화를 소개한 것도 그녀였고, 여성운동의 불씨를 건넨 것도 그녀였다. 물론 정치인 김대중은 아내의 고언(苦言)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남편이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이후 사회적 소외계층과 약자들을 청와대로 가장 많이 초대한 영부인도 그녀였다.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 여러 가지 의구심과 이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어느 수상자인들 소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역사가 기록해야 할 몫이다.

향년 97세, 흔히 호상(好喪)이라고 일컬을 만한 나이에 이희호여사는 눈을 감았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2019년 6월 10일 밤 11시 37분이었다. 격동의 역사의 한 장을 넘기는 순간이었고, 민주화운동의 증인(證人) 한 사람이 떠나는 안타까운 순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진실과 거짓을 품은 채, 역사의 침묵 속으로 영면(永眠)하고 말았다. 여성운동의 대모(代母)였던 그녀의 기구한 삶을 두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는 없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아냥대고 가볍게 희화화하는 자들이 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백가지를 잘하고도 한가지의 흠으로 구십 아홉 가지를 나무란다면, 누가 함부로 의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이나, 죽음 앞에서 고인을 모욕하는 일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를 저버리는 일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여정 제1부부장 편에 보낸 조의문에서 “리희호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리희호 녀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두음법칙이 빠진 북한식 표기와 남북이 아닌 북남으로 표기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원문에 충실하고 진실하게 보도하는 것이 언론과 방송사의 의무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 것은 2009년 8월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명(非命)에 떠난 후 “내 가슴의 절반이 무너졌다”고 탄식하고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32년이 된 그날,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거행된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후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고 이희호여사는 홀로 견디어낸 인동(忍冬)의 꽃으로 피어나, 마침내 남북관계가 소원해진 지금, 희망의 불씨를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북 평화통일의 밑거름으로 남아주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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