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로 치환된 혼돈의 세계
노이즈로 치환된 혼돈의 세계
  • 황인옥
  • 승인 2019.06.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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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展 대구미술관 9월 15일까지
설치·영상 등 신작 29점 선보여
디지털 전기신호 오류 코드화
주류-비주류·중심-주변 등
현실서 치닫는 대립구조 의문
소외·배제된 것에 가치 제기
진실에 대한 깊은 탐구 ‘시각화’
박종규작가
디지털 이미지인 픽셀과 노이즈로 ‘전징한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해 가는 박종규 작가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 9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박종규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디지털 없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현대인의 삶에서 디지털이 적용되는 범위는 너무나 방대해서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멘탈붕괴다. 작가 박종규는 이 점에서 영리하다. 현대인에게 가장 친숙한 디지털, 정확히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에서 추출한 ‘점’과 ‘선’의 이미지를 코드화한 노이즈로 시대의 담론을 풀어간다. 우리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디지털적인 요소들로부터 축출한 재료로 자신의 서사를 전개하며 설득력을 높여가는 것. 그가 리안갤러리, 인당뮤지엄, 뉴욕 아모리쇼 포커스 섹션, 바젤홍콩아트페어 인사이트 섹터, 홍콩 벤 브라운 갤러리 등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는 배경에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오늘, 우리에게 집중한 결과일 것이다. “음악의 잡음 같은 것, 미술에서 배제된 것을 노이즈로 개념화해서 10여년 간 작업해 왔어요.” 

 

박종규 작 '~Kreuzen'. 대구미술관 제공
박종규 작 '~Kreuzen'. 대구미술관 제공

‘순항’을 뜻하는 박종규 개인전 ‘~크루젠(kreuzen)’이 대구미술관에서 9월 15일까지 열린다. 전시에는 회화(20점), 설치(6점), 영상(3점) 등 총 29점의 신작을 모았다. 특히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하는 4전시실의 영상, 설치 작업은 그간 선보여온 회화 이미지를 3차원의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노이즈’는 전자공학이나 기계제어 분야에서 기계의 동작을 방해하는 전기신호로, 현대음악에서는 ‘배제된 것’ 또는 ‘제외된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소음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노이즈’가 작품의 재료가 된 것은 10여 년 전. 당시 대구는 모더니즘의 영양 아래 있었고, 작가는 미니멀리즘의 막내 세대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장 미니멀적인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당하는 당시의 미술 사조는 그의 반발심을 부추겼다. 작가는 “과연 배제되는 것들이 진정으로 배제돼야 하는 것들일까? 어쩌면 제거하고 배제된 것들에 더 예술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 우리가 보고 있고 믿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탐구에 들어갔다.

쐐기를 박은 것은 정치권력의 변화로부터 경험한 이념적인 혼란 상황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흑과 백, 옳음과 그름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을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정권교체로 인해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주변, 쏠림과 배제가 뒤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소외현상’이 그에게는 혼돈으로 다가왔다. 이 ‘소외’가 디지털의 노이즈와 정확하게 겹쳐졌다. 그에게 노이즈는 주류사회나 예술에서 배제 또는 제외되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소외 또는 배제를 컴퓨터적인 장애, 또는 오류에 해당하는 ‘노이즈(Noise)’로 치환했어요. 노이즈를 새로움을 발견할 통로로 두고 상상의 지평을 확장해 왔어요.”
 

박종규 작 '~Kreuzen'. 대구미술관 제공
박종규 작 '~Kreuzen'. 대구미술관 제공

0과 1로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인식되는 디지털의 세계와 주류와 비주류, 흑과 백, 옳고 그름 등 이항 대립적으로 치닫는 현실세계의 틀을 해체하는 개념으로 노이즈를 다양하게 차용한다는 대전제는 일관되게 견지한다. 그러나 표현법은 작품마다 다양하게 변주된다. 평면,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무한증식 된다. 작가가 “증식을 위해 나름대로 공식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나에서 모든 작품이 출발했기 때문에 작품은 달라도 의미는 동일하죠.”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기다리는 공간은 암막이 드리워진 전시장. 사람을 인터뷰한 정상적인 영상과 노이즈로 전환된 영상이 벽면을 마주해 설치돼 있고, 그 중간 허공에는 인터뷰 영상을 4m, 6m, 8m 등의 다양한 모듈로 전환해 뒤섞어 놓아 노이즈처럼 인식되는 작품을 매달았다.설상가상 바닥에는 거울까지 설치했다. ‘노이즈’의 겹겹 강화다.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인식체계를 의심해 보자는 취지로 만들었어요.” 옆 전시실에 설치한 ‘흐트러진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미디어 작품 역시도 맥락은 같다.

암막 속 공간의 동선을 따라가다 불현듯 완전히 다른 공간 속으로 내던져진다. 비현실적으로 밝은 공간이다. 어두움과 밝음의 대비다. “영화관에 있다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온 느낌처럼 구현했어요.” 어두운 암막에서 갑자기 환한 빛 속으로 이동해 흡사 무중력 상태처럼 다가온다. 이 공간에는 대형 평면 작품들을 걸었다. 픽셀이나 노이즈라는 디지털 이미지를 작가의 손이라는 아날로그로 작업한 평면 작업들이다. 디지털에서 축출한 노이즈와 작가의 아나로그적인 노동성이 묘하게 겹쳐지는 작품이다.

비현실적으로 밝은 공간에 노이즈를 회화처럼 구축했다는 표현법에서 다를 뿐 암막 공간의 영상이나 미디어 작업과 주제는 동일하다. 바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내가 딛고 서 있는 바닥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053-803-790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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