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향기
냄새와 향기
  • 승인 2019.06.1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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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전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좋은 냄새를 ‘향기’라고 한다. 그러니 그냥 ‘냄새’라고 하면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특히 사람에게서 어떤 냄새가 난다는 것은 부정적인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냄새는 그것의 존재와 사실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몸부림일 수 있다.

‘당신 몸에 냄새가 나니 샤워 좀 해요.’ 아내는 이런 말로 틈틈이 내게 무안을 준다. 그러나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니 얼른 샤워하는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몸에 냄새가 나니 자주 샤워하도록 하세요.’ 샤워하고 나오는 나에게 아내는 다시 충고한다. 한편으로는 또 잔소리인가 싶다가 또 한편으로는 ‘이제 냄새가 없어 졌구나’ 싶어 안도가 되기도 한다.

‘당신 몸에서 향기난다’고 말을 하는 것은 덕담이 된다. 어떤 이의 몸에서 맡게 되는 비누 향기, 향수를 살짝 뿌린 듯 은은한 향기는 사람의 기분을 참 좋게 한다. 그러나 당신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은 부부가 아니면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말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애써 감추어야 할 때이다.

어린 시절, 여행 중에 속이 좋지 않아 배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점점 더 심해져서 급히 화장실에 뛰어 갔지만 결국 팬티에 변을 조금 흘리고 말았다. 대충 처리를 하고 나왔지만 여행 내내 온통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신경을 쓰게 되어 여행의 기분을 완전히 망쳐 버렸다. 내게 풍겨나는 이 냄새를 다른 사람이 알지 않을까 싶어 감추려고 애를 썼던 그 때의 일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사랑과 가난과 송곳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연인들의 얼굴은 빛이 나고 아무리 감추려 해도 주머니 속의 송곳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공감이 간다. 그러나 가난함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말은 무척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린 시절, 감추려고 애를 썼던 팬티에 묻은 변 냄새처럼 가난의 냄새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감출 수 없는 것일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그 가난의 냄새를 생각나게 했다. 주인공이 ‘이거 무슨 냄새이지?’ 코를 헉헉거리며 묻는 질문에 속으로 ‘무슨 냄새?’ 하다가도 마침내 그것이 가난의 냄새인 것을 깨닫는다. 그 냄새는 오랫동안 살아 온 반 지하의 냄새이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아무것이나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음식 냄새일 수도 있다.

나의 가난이 다른 사람에게 냄새로써 전달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은 슬픈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현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냄새를 맡으려 하지 않거나 맡을 수 없는 구조가 되어가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은 보기에 편치 않지만 그래도 부유층이 가난의 냄새를 맡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냄새가 난다는 것은 가까이 있다는 것이니 이 영화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가까이 섞여 사는 이야기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며칠 전, 알고 지내던 어떤 목사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 화재로 살던 집이 전소되고 가족이 심한 중상을 입고 한 아이는 생명이 위독한 상태이다. 놀란 가슴을 안고 병원을 방문하여 사정을 듣고 위로했다.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그 목사의 사정은 몹시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 목사가 가난의 냄새를 잘 감추어 온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의 가난의 냄새를 맡지 못한 것일까? 냄새를 맡지 못할 만큼 우리 사이는 생각보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듯 내 코는 지인들의 가난의 냄새를 잘 맡지 못할 만큼 둔해져 버린 것일까?

향기는 기분을 좋게 하지만 호사스럽다. 냄새는 역겨울 수 있어도 소통과 공감을 요청하는 약자의 호소이다. 존재의 고통스러움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다. 냄새, 고통을 호소해 오는 존재의 몸부림에 조금 더 민감해져 보기로 했다. 공감이 주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울고 함께 웃기를 다짐하며 기도한다. 향기에만 민감하지 않게 하소서. 내게서 나는 냄새에 민감하듯 다른 이의 냄새에도 민감하게 하소서. 냄새를 피하지 말고 냄새를 통해 그의 아픔에 공감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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