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윤덕우 칼럼]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 승인 2019.06.1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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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김대중 전 대통령때 검찰을 출입했다. 당시 출입처였던 대구지검 복도 액자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대중 정부의 구호다. 20여년이 흘러지만 아직도 유효한 구호다. 검찰은 지금도 여전히 개혁과 조직 쇄신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2개월만인 1998년 4월 “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이건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일본 검찰이 다나카 총리를 구속한 사례를 보라. 지금까지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아 왔다. 앞으로 검찰은 법의 엄정중립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에게 강조한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누구보다 검찰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검찰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 깊은 상처를 입었다. 말따로 행동따로였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에 불리한 의혹 사건에 대해선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히라”하고 집권당에 불리한 사건에 대해선 “언론의 마녀사냥”이라며 검찰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규정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역시 검찰개혁을 크게 외쳤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검찰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제껏 검찰은 권력의 지시에 따라, 정치적 고려에 따라 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3·1절 기념사에서 “(검찰·국정원 등) 몇몇 권력기관은 그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왔던 게 사실이다.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새정부는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독립성을 강조했으나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만든 1차적 책임이 바로 정권에 있다는 사실에는 큰 비중을 두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낙점했다. 윤 지검장의 총장 발탁은 현 정부에서 중점을 두고 추진한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함과 동시에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 개혁을 지속해서 밀어붙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1988년 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검찰총장에 고등검사장급이 아닌 지방검사장급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격적인 인사다. 야당은 벌써부터 청와대가 ‘반문(반 문재인)’ 인사들에 대한 사정을 이어가기 위해 윤 지검장을 낙점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윤웅걸 전주지검장은 지난 10일 검찰 내부 전산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개혁을 명분으로 검찰을 타도하거나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방향을 틀고 제대로 된 검찰개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제시된 검찰개혁안과 같이 권력의 영향력은 그대로 둔 채 검찰권만 약화시킬 경우 개혁은 커녕 힘 빠진 검찰의 정치 예속화는 더욱 더 가중될 것”이라며 “검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다 제한하고 검찰을 통치수단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권력자에게는 좀 더 불편한 방향으로 검찰이 개혁되는 것이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 검찰은 개혁 대상으로 몰려 인적(人的) 청산의 수모를 당하는 것도 부족해 검경수사권 조정 지경에까지 이르는 치욕을 겪고있다. 검찰의 처지는 어쩌보면 자업자득이다.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해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탓이다. 검찰이 이런 수난과 치욕을 당하고도 정권의 입맛에 맞춰 수사하는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검찰만의 책임으로 몰고가는 것은 지나치다. 밉보이면 한직으로 밀려나고 잘보이면 누구처럼 영전이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추락하게 된 1차적 원인은 검찰을 정권의 도구로 삼아온 권력 그 자체다.

청와대는 대통령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 결과로 정권과 가까운 검찰간부들은 승승장구했다. 윤웅걸 검사장의 말대로 검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다 제한하고 검찰을 통치수단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검찰개혁이라 할 수 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는 좀 더 불편한 방향으로 검찰이 개혁되는 것이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다. 검찰 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권력기관을 운용함에 있어서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만 일하도록 대통령부터 거듭나겠다고 천명해야한다. 과거 우리 대통령들은 검찰을 정권을 위해 봉사하도록 악용해왔던 게 사실이다. 어쩌면 검찰이 바로 서기 전에 대통령부터 바로 서야 한다.

부패척결과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직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검사들도 많다. 정의감과 윤리의식이 투철하고 균형잡힌 세계관을 지닌 검사들이 적지 않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권력의 시녀가 아닌 국민의 검찰로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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