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감정, 요동치는 아트…관념적 지식 숭배사회 ‘비틀기’
일렁이는 감정, 요동치는 아트…관념적 지식 숭배사회 ‘비틀기’
  • 황인옥
  • 승인 2019.06.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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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조각가 노해율·최연우展… 021갤러리 7월 24일까지

021갤러리(대구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두산위브더제니스 상가 204호)에 두 조각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두 작가 공히 과학적 계산과 철학적 고민을 조각으로 전개한다. 노해율은 움직임을 통해 감정 상태를 드러내고, 최연우는 인쇄매체를 활용해 ‘무엇이 진짜인지’ 탐구한다. 전시는 7월24일까지.

 

노해율 작 ‘layered stroke-02’.
노해율 작 ‘layered stroke-02’.

 

◇움직임에 감정을 은유한 노해율

 

움직이는 예술 ‘키네틱 아트’
와이어·철·전동회전장치 활용
기계적 운동, 심미감으로 진화

 

노해율
노해율

어느 늦은 가을날, 누군가가 고즈넉한 갈대밭을 거닌다고 상상해보자.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높푸른 가을 하늘과 뺨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에 몸을 내맡기자 감성에 한껏 물이 오르고, 자신도 모르게 성근 갈대밭 긴 풀섶으로 손을 뻗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손길이 이어지면서 갈대무리들이 스러졌다 일어나는 행렬이 흡사 갈대들의 군무처럼 다가온다.

작가 노해율의 작품 ‘Moveless’은 갈대밭 상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무게 중심을 하단에 두고 조명을 설치한 원통형 튜브 수십 개를 바닥에 설치하고 관람객이 공간을 거닐며 튜브에 손을 대면 리드미컬한 일렁임이 일도록 했다. 움직임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성실하게 수행한 관람객은 바다 속에서 옅은 광채를 뿜어내는 산호초 사이를 활보하는 야릇한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새로운 경험은 곧 새로운 에너지로 연결된다. “치밀한 과학이론을 물성에 적용해 철학적인 관점을 서술하고 있어요.”

조각가인 노해율은 움직임을 모티브로 조각을 구현한다. 이른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움직이는 미술) 조각이다. 철저한 과학적 이론으로 다양한 움직임을 조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움직임을 흥미 위주로 구현하는 키네틱 아트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작가정신을 개념화하는 서술법으로 키네틱 아트를 활용하고 있는 것. “과학과 결합한 움직임을 통해 시각적 상상력을 극대화해요. 이를 통해 작가정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해요. 그런 점에서 제게 키네틱 아트는 운동을 재료로 한 조각이죠.“

이번 전시에는 작품 ‘layered storke-02’, ‘general mobile-02’, ‘gravity draw-01’을 소개한다. ‘layerd storke-02’는 와이어와 철, 전동회전 장치로 구현한 움직이는 조각이다. 이 조각의 움직임은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장치인 모터를 사용한다. 사람의 손길 같은 모터의 아날로그적인 움직임을 활용한다. 특별한 모터가 툭툭 쳐서 소리와 움직임을 만들 내는 방식이다. 이 움직임은 작가의 현재 감정상태에 대한 은유다.

“우리가 물 속을 헤첨쳐 나온 후 뒤를 돌아보면 에너지의 흐름이 물 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때의 그분은 편안함이에요. 자신이 남긴 에너지의 흐름을 확인하고 존재를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심리죠.”

‘gravity draw-01’은 각기 다른 크기의 정사각형 프레임 4개가 방사형으로 겹쳐진 형태다. 프레임은 장방형의 망(망사) 형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바르게 정렬되어 있는 사각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부구조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다. “이 작품에는 안정감 있는 형태 내부의 불안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또 다른 전시작 ‘general mobile-02’는 천장에 서로 다른 형태의 모빌을 매달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게 설치했다. 각각의 모빌들의 움직임은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관람객은 모빌의 일부만 보게 된다. 움직임이 제각각이어서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보는 것이 과연 전체인지, 일부만 보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지를 꼬집고 싶었어요.”

작가는 움직임이라는 미술적인 표현법을 통해 개념적인 작가정신, 즉 내면의 의식의 흐름을 드러낸다. 이때 키네틱 아트의 움직임은 중요한 조각 요소로 활용된다. 키네틱아트의 기계적, 공학적 운동의 차원이 심미적, 해석적 차원으로 확산해 전개하는 것. 이때 개념적인 주제는 거대담론 보다 미시적인 담론이 선택된다. 시기마다 작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조각의 주제로 등극한다.  

“단순하게 운동성이라는 형식미만 빌려올 뿐 키네틱 아트가 가지는 움직임이라는 흥미는 지양해요.”  

 

 

최연우 작
최연우 작

 

◇존재와 예술의 실체를 찾아가는 최연우

 

인쇄물 원통으로 만들거나 접어
문자·이론 집결지 ‘도시’ 형상화
초끈 이론 적용 ‘진짜 지식 ’ 찾기

 

최연우
최연우

조각가 최연우가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와 석사를 마칠 때 까지만 해도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다.“남들은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가 지속” 됐다. 철학서의 예술론들을 뒤졌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실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시점에서 가장 원론적인 질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그 부담감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그 즈음인 2005년에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의 갤러리를 돌아보며 답을 찾고 싶었다. 그는 당시 뉴욕에서 인도출신의 영국 조각가 애니쉬 카푸어, 설치미술가 타라 도노반, 탐 프리드먼 등의 전시들을 접했다.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를 관람하면서 자신을 에워 쌓던 희미한 안개가 걷혀나가는 느낌을 받게 됐다. 깨달음이었다.

“제가 봤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그들이 너무나 즐겁게 작업한 결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놀았다고는 하지만 완성도도 뛰어났죠. 그때 저 역시 ‘비주얼로는 잘 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됐어요.”

월간 미술 잡지를 뜯어 굴려서 원통 형태를 만들거나 접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였다. 지금까지 그를 괴롭혔던 ‘관념적인 지식’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진짜 지식이 아닌 관념적인 지식 숭배로 점철된 사회적 통념에 대한 비틀기의 출발이었다. 이 시기 “글로 배운 예술은 글로 배운 테니스와 다를 바 없다”는 의문을 품었고 “진짜 미술은 무엇이며, 진짜 세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에 돌입했다. 당시 그가 주목한 것은 관념적인 지식의 상징처럼 된 인쇄 매체였다. 그는 미술 잡지에서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등 다양한 나라의 신문이나 잡지를 활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견고화 해갔다.

“상징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체득한 앎 사이의 괴리를 지식의 대표적 상징인 활자매체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2006년에 귀국하면서 인쇄매체를 원통으로 만들거나 접어 도시를 형상화한 작품들을 시도했다. ‘글로 쓴 미술’에 대한 비판이었다. 문자나 이론으로서의 지식의 집결지로 ‘도시’에 주목한 것. 이 작품들로 2007년에 첫 전시를 열었고, ‘진짜 지식’의 실체 찾기는 본격화됐다. 1년 후인 2008년에 작가는 미국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떠났다. 뉴욕에서의 10년은 ‘진짜 지식’을 구체화하는 시간들로 점철됐다. “대량의 잡지와 전단지들에 인쇄된 글자들에 빛이 투영되면 내용이 모호해지죠. 인간이 숭배하는 관념적인 지식에 대한 비틀기였죠.”

작가가 구축한 도시는 거대하고 세밀하다.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과 도로 하나하나가 세포처럼 살아 움직인다. 2차원에 머물렀던 지식이 3차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이 도시에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을 적용했다. ‘초끈 이론’은 만물의 궁극을 끈과 같은 형태라는 이론이다. 우주의 만물은 소립자나 쿼크와 같은 기존의 단위보다도 훨씬 작은 구성요소인 ‘진동하는 가느다란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에서 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 현의 진동 패턴과 주파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끈들이 진동하는 패턴에 따라서 각기 입자마다 고유한 성질이 생긴다고 보았다. “저의 삶의 방식이나 미술에서 진짜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면서 초끈 이론을 차용했어요.“

인쇄 매체를 활용해 구축한 도시를 허공에 매달아 우주공간처럼 구현했던 이전 작업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 허공에서 전시장 바닥으로 내렸다. 작가는 ”이번에는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고 했지만 허공에 떠있는 관념적인 지식에서 현실세계 속의 경험적인 지식으로의 귀환처럼 다가왔다. 053-743-0217 053-743-0217.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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