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충고
칼 세이건의 충고
  • 승인 2019.06.18 2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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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재
기획특집부장




두 달 전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으로 블랙홀을 관측한 사진이 공개되자 세계는 이 특별한 천체에 매혹됐다. 그때 가장 많이 언급된 과학자의 이름은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이었지만,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린 사람도 많았다. 2019년 블랙홀에 대한 열광보다 약 40년 앞서, 책과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로 우주 열풍을 불러온 사람이다.

대구 사람들은 중앙로에 있는 대구서적, 제일서적, 학원서림 등에서 그 책을 샀다. 서점에 진열된 ‘코스모스’는 눈길을 사로잡았으나, 두께도 주눅이 들게 했고 책값도 꽤 비쌌다. 그 책을 샀던 한 친구는 천문학과로 진학했다. 당시 천문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서울의 단 두 곳뿐이었다. 의대로 진학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가 천문학과에 소신 지원한 데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힘을 보탠 셈이다.

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중에는 청소년기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며 천문학자를 꿈꾼 사람이 다수 있을 것이다. 사건지평선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세계의 연구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칼 세이건 사후 18년이 흐른 2014년에는 ‘코스모스’라는 같은 이름으로 13부작 다큐멘터리가 다시 제작돼 방영됐다. 거기서 진행을 맡은 닐 타이슨은 10대 시절 칼 세이건에 감명을 받아 천문학자가 된 사람이다. 두 사람은 미래의 과학자들과 대중들을 과학의 길로 이끌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해 왔으며, 그 노력은 인류의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는 사건지평선망원경 프로젝트에도 보이지 않는 공헌을 했다.

블랙홀 사진을 계기로 칼 세이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흥미로운 글을 만났다.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이 ‘코스모스’ 새 시리즈 방영에 즈음해 ‘뉴욕’매거진에 쓴 글이다.

어린 사샤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디 계신지 묻자 아빠는 슬픈 목소리로 두 분이 세상을 떠났다고 대답했다. 사샤가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는 거냐고 묻자, 아빠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대답을 했다. 아빠는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뵙기 바라지만,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을 이유와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런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 수 없다고. 사샤가 왜요?라고 또 묻자 아빠는 매우 부드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믿어버리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 특히 권위 있는 이들의 생각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속아넘어가게 될 거라고.

이 글을 읽고 나서는, 과학 지식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준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칼 세이건이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린 딸에게 두려움을 불러올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하는 아빠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사후세계를 믿든 믿지 않든, 아이가 충격을 받을까봐 두렵다는 핑계로 하늘 나라에 계신다거나 나중에 만난다거나 하는 말로 얼버무리지 않을까. 그후 혼란스러워하는 사샤에게 부모는 과학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안정감을 갖도록 도와주고, 현재의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잘 이끌어주었다.

칼 세이건이 딸에게 해 준 말,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믿어버리는 건 위험하다’는 특히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이 시대를 향한 충고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삶이란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바라는 대로 믿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려면 얼마나 강한 정신력이 필요할 것인가. 특히 요즘처럼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시대,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뒤섞는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더구나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알고 있는 컴퓨터가 내 입맛에 맞는 글과 영상을 내 눈앞에서 계속 흔들어 대고 있는 요즘에는.

그리하여 칼 세이건의 말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내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일들이 사실이라는 주장과 증거가 계속 제시되고, 내가 거짓이기를 바라는 일들은 거짓이란 주장과 증거가 계속 나온다면, 지금 당신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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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2019-07-01 11:44:08
참으로 재미 있는 글 입니다!!!

대구서적, 제일서적, 학원서림,,,
구수한 잉크 냄새 맡으며 세상을 찾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한때 저를 두려움에 빠지게 했었던 칼 세이건 교수의 말 입니다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속에서 우리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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