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염상에 배불뚝이 ‘아수라’…불법 수호신 천년의 면모
귀염상에 배불뚝이 ‘아수라’…불법 수호신 천년의 면모
  • 김광재
  • 승인 2019.06.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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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산사에 자리한 ‘군위 지보사’
‘세 가지 보배 지닌 절’ 유래
현존하는 보물은 삼층석탑
기단에 새겨진 팔부중 ‘눈길’
‘4대강 사업 즉각 폐기’ 유서
소신공양한 문수스님 비문엔
“파사현정 정신 후학에 전승”
지보사
지보사 전경.
 
문수스님부도와비
문수스님 부도와 비.
 
지보사삼층석탑
보물 제 682호 지보사 삼층석탑.
 
지보사3층석탑에새겨진아수라상
지보사 3층석탑에 새겨진 아수라상.

군위읍 동북쪽에 있는 선방산(船放山·437m)에는 지보사라는 크지 않은 절이 있다. 옛날에는 선방산 꼭대기에 큰 못이 있었는데, 당나라 장수들이 거기서 뱃놀이를 한 뒤에 바위를 던져 못을 메웠다는, 산 이름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절 이름은 보배(寶)를 간직(持)한 절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도 전설이 있다. 이 절은 신라 문무왕 13년(서기 673)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 보물은 사람 열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가마솥,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맷돌, 그리고 단청으로 쓰는 오색 흙 혹은 청동향로라고 한다. 그 보물이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고 한다. 지난 2000년에 세운 ‘대웅전불사공덕비’에는 일제강점기에 유실됐다고 적혀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가 이 산중의 작은 절에서 만나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있다.

대웅전불사공덕비에는 또 “98년 대웅전 해체 때 나온 광희 18년에 중수한 상량문에는 현재의 持를 쓰지 않고 땅(地)를 넣어서 地寶寺로 적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이 도량 자체가 보물이라는 뜻이리라.”라고 새겨져 있다. 광희는 아마도 강희(康熙)를 잘못 쓴 것이 아닌가 싶다. 강희 18년이라면 조선 숙종 5년(1679년)이다. 대찰도 아닌 작은 절이다 보니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을 것이고, 새로 절을 일으키면서 누군가 이름을 바꾸었을 수도 있겠다. 사연이야 어떻든, 가파른 비탈에 자리잡은 이 절터가 바로 보배라는 풀이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 해도 지보사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의 보배가 더욱 유명하다. 보물 제68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다. 원래는 산 너머 극락사에 있던 탑인데 절이 망하자 읍내 동부동 절골로 옮겨졌다가 다시 이곳 지보사로 왔다고 한다. 올라오는 길에 ‘극락사’ 표지판이 있었으니, 그 후에 극락사도 새로 지어진 모양이다.

원래 이 절에 있던 탑이 아니어서인지 대웅전 앞마당이 아니라 누각 오른쪽 마당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탑을 조용히 감상하기에는 더 좋다. 장식성이 두드러진 고려 초기의 석탑인데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상층 기단에 새겨진 팔부중(八部衆)이다. 팔부중은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을 가리키는데, 팔부신장(八部神將), 천룡팔부(天龍八部)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도의 토속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사람을 해치는 잔인한 귀신 야차(夜叉), ‘건달’의 어원인 건달바(乾達婆), 마징가제트의 ‘아수라백작’으로 익숙한 아수라(阿修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보사 3층 석탑에 새겨진 팔부중 부조 중에는 아수라상이 가장 보존 상태가 좋고, 조각 솜씨도 뛰어나다. 아수라는 보통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 혹은 여덟 개의 팔을 지닌 모습이다. 이 탑의 아수라상은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다. 높이 든 두 손은 각각 둥근 것을 들고 있는데 해와 달을 의미하는 것 같다. 두 손은 합장을 하고 있고, 나머지 두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확실치 않은데 단검과 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수라의 세 얼굴이 모두 너무나 귀엽다는 점이다. 볼록한 배와 배꼽도 꼬집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아수라는 원래 고대 인도에서는 최고의 신 중 하나였으며 불교신화에서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난폭한 신이다. 시끄러운 난장판을 가리길 때 쓰는 ‘아수라장’이란 말이 아수라와 제석천이 싸운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동쪽 끝까지 온 아수라가 돌 속에서 천년을 지내다 보면 저렇게 변할 수도 있을 듯하다.

석탑을 감상하고 돌계단을 내려오니 새로 건립한 부도가 보인다. 종 모양의 부도에는 ‘무경당 문수종사’라고 적혀있다. 지난 2010년 지보사에서 수행 정진하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위천 둑에서 소신공양한 스님이다. 부도 옆에는 그의 행장과 유서내용을 적은 비석이 서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건립위원장을 맡았고 진관스님이 비문을 썼다.

“무경당 문수종사는 제방선원에서 20여년 수행 정진한 선승으로써 불교계에서 촉망받던 비구승이었고, 대한불교조계종 승려가 나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소신공양으로 통렬히 비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문수종사의 파사현정의 정신을 후학들에게 전승하고자 한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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