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그대
가는 몸뚱이에 심지 곧게 박은 너를
힘껏 끌어안지 않아도
그렁그렁하다 북받쳐 넘치는 눈물
굳이 닦아주지 않아도
친구처럼 너는
내게 온다
흔들려 빛나고 져 더 빛날 그대
휘몰아치는 바람 속 너를
달려가 잡아주지 않아도
굳은 어둠 향해 저항하는 눈빛
어루만져 주지 않아도 너는
가족처럼 먼저
내게 온다
설령 곧 일지라도
청하지 않을 너지만
오는 동안 네가 그랬듯
형제처럼 나는
네게 달려간다
◇권순학=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과 『그들의 집』이 있고 저서로 『수치해석기초』가 있다.
<해설> 몇 년 전 우리나라 시공을 달군 촛불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일어난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인한 소녀의 주검 앞에서 많은 촛불이 눈물을 흘린 적 있다.
당시 그 또래 딸을 키우던 화자는 촛불을 들지도 촛불이 되지도 못했음을 회안(悔顔)하며, 그 후 촛불은 한곳에 머물 수 없었고 가는 곳마다 더욱 더 활활 타올랐다. 그러는 사이 화자 또한 초가 석순처럼 자랐고 불이 환하게 켜졌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