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귀의’ 중점 正書가 글씨공부의 요체이니라
‘자연귀의’ 중점 正書가 글씨공부의 요체이니라
  • 김영태
  • 승인 2019.06.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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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통해 손에 넣은 ‘서법정전’
옆에 두고 수없이 읽으며 학문 매진
9년 후 직접 제본 떠 제자들에 배부
특별강좌 열어 正書이론 필법 강조
 
소헌 선생이 복사 제책한 「서법정전 재판본」의 앞표지(왼쪽), 뒤표지 내지의 소헌선생 자필기록
소헌 선생이 복사 제책한 「서법정전 재판본」의 앞표지(왼쪽), 뒤표지 내지의 소헌선생 자필기록

 

 

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 소헌평전(20)-장년시절11. 1972(65세)

◇정서(正書) 특강

60대 중반에 접어든 소헌 선생은 제자들의 성장을 위한 특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계기는 불후의 명저 「서법정전(書法正傳)」이었다. 1992에 선생은 우연히 엿장수에게서 이 책을 입수했고, 수십 차례 정독했다. 「서법정전(書法正傳)」은 청대(淸代)초기 1782년 건륭임인년(乾隆壬寅年)에 서예가인 취봉(醉峯) 장 화(蔣和)(1736~1795)가 찬집병서(纂輯幷書)한 저서이다. 이 책은 4책으로 편집되어 있으며 1책은 ‘필볍정해(筆法精解)’, 2책은 ‘점획전도(點劃全圖)’, 3책 ‘분부배합법(分部配合法)’, 4책이 ‘전자결구거례(全字結構擧例)’이다.

1782년 건륭 임인년(壬寅年)에 편찬된 「서법정전」이 180년 후 갑년(甲年)을 세 번 넘긴 임인년(壬寅年) 1962년에 소헌 선생의 꿈을 통해 접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희한하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이 책을 옆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수도 없이 읽었다. 9년 후 소헌 선생은 이 책을 직접 복사하여 제책한 「서법정전재판본(1971)」 19권을 제자들에게 배부하고 1972년 1월 1일부터 특강을 시작했다. 그 후 1978년과 1980년에도 특별 강좌를 열었다.

소헌선생의 「서법정전 재판본(1971)」 책 뒤표지의 내지(內紙)에는 다음과 같은 선생의 자필(自筆) 기록이 있다. 그대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차첩(此帖)은 소헌몽득신서(素軒夢得神書)인바 전우문인(傳于門人) 재판십구권(再版19卷)하여 1972년 1월 1일부터 특강(特講)하다. 원본(原本)은 상대(相大) 소지(所持)하다

재판(再版) 소지(所持) 수강인(受講人)은 김세헌, 박선정, 김석환, 김상은, 조용주, 김제완, 김기탁, 정화식, 강춘희, 이상태, 전진원, 박정영, 박희동, 도리석, 서찬호, 서복향, 류영희 박준기 이상 18명에게 특별(特別) 강의(講義)하다.

2회 행서초서법(行書草書法), 행초신운(行草神韻) 재판(再版) 수강인(受講人) 각자(各自) 1권.

원본(原本) 상대(相大) 보관(保管). 수강인(受講人)은 우(右) 1회 인원(人員) 외(外) 이경영, 신원일, 고영기, 정휘탁, 백락휘 이상 23명이다.

재판본 등초(謄抄) 수강자(受講者)는 남두기, 박재화, 신원일, 조정군, 김헌규.

우(又) 등초인(謄抄人) 최중길, 이원세, 우(又) 한영구, 정덕희 등초(謄抄)하다.

1978년 무오(戊午) 12월 17일 재(再) 특강(特講) 시작하다. 수강자 김영훈, 양태지, 송의용, 정문현, 유동하, 김진혁, 이옥희, 김정심, 유정희, 이정배. 우(又) 등초인(謄抄人) 고득성. 기미(己未) 1979년 2월 19일 특강(特講) 종료(終了). 우(又) 재(再) 특강(特講) 1980년」 이라 적혀 있다.

소헌 선생은 이 책에서 정서 이론(正書 理論)을 확립하고 제자들에게 강좌를 마련한 것이다.

「정서(正書)」란 영자팔법(永字八法)을 삼법(三法)으로 함축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으며 삼법(三法)을 사방확산(四方擴散) 용필(用筆)하면 전·예·해·행·초(篆·隸·楷·行·草)의 모든 글자를 다 쓸 수 있는 서법(書法) 이론이다. 한편 「정서」는 자연회귀(自然回歸)에 중점을 두며 「정서」의 삼법이라 함은 역입(逆入)은 양(陽), 도출(導出)은 음(陰), 삼절(三折)은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한다. 또한 「정서」는 신축성을 포용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예로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정서(正書)는 정서자형(正書字形)을 종장변형(從長變形)으로 쓰는 것이다, 둘째 예서(隸書)는 정서자형(正書字形)을 횡장형(橫長形)으로 쓰는 것, 해서(楷書)는 正書 字形을 정교(精巧) 방영형(方正形)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행서(行書)는 연맥유연형(連脈柔軟形)으로 쓰는 것, 마지막으로 초서(草書)는 정서자형(正書字形)을 유연활기(柔軟活氣), 자연감축(自然減縮) 형태(形態)로 쓰는 것이다. 그 대의(大義)는 육서(六書)에서 나온 것임을 밝혀 둔다. 육서(六書)는 바로 상형(象形), 지사(指事), 해성(諧聲), 회의(會意), 전주(轉註), 가차(假借)를 일컫고 있다」고 하였다.

소헌 선생의 정서(正書)는 자연귀의(自然歸依)에 중점을 둔 것으로 서예의 첫걸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글씨공부의 요체(要諦)라 할 수 있다. 문하생들에게 일관되게 잊지 말라고 강조한 것이 심정필정(心正筆正)의 정신과 더불어 바로 정서(正書)에 대한 필법(筆法)이었다.

 

봉강서도회에서 작품지도하는 소헌 선생 (왼쪽에서 세 번째).
봉강서도회에서 작품지도하는 소헌 선생 (왼쪽에서 세 번째).

 

무료로 서도 가르친 봉강서도회
글씨 공부에 앞서 ‘예도’ 중시
세대불문 다양한 사람들 모여
가족같은 관계로 허물없이 지내

◇우리는 가족

봉강서도회 회원전도 계속 진행됐다. 1972년 제5회 봉강서도회(회장 박선정) 회원전(1972.6.2.~6.11)이 대구백화점 화랑에서 열렸다. 회원 54명이 77점의 작품을 내 놓았다. 선생은 10곡병 「출사표(出師表)」와 행서 2곡병을 찬조 출품했다. 회원전 이후 매일신문은 「우리는 가족(家族)」이라는 특집판을 기획해서 ‘봉강서도회’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1972.9.10)

「사람이 뜻이 맞으면 서로 모이게 되고 서로 모이면 그 자취를 남겨야하는 것이니 옛날 회계(會稽)의 난정(蘭亭)이 역시 뜻맞는 사람의 모임이요 千古(천고)에 그 향기를 남김이 또한 성스러운 자취의 하나이다」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소장(少長)을 가리지 않음과 같이 봉강(鳳岡)의 모임에서도 장소(長少)와 남녀를 가림이 없이 인격을 기르고 예도(藝道)를 닦는데 뜻이 맞는 서우들로서 모아진 것이다. 서예가 소헌 김만호 옹을 받드는 서우(書友)들의 모임인 봉강서도회(鳳岡書道會).

“서도를 가르치는 곳은 많은데 어느곳에 가든 한달 수강료가 최저 2~3천원은 됩니다. 한데 우리 소헌 선생은 수강료를 받지 않아요. 뿐더러 진실로 서법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에겐 모든 편의를 제공해 줍니다. 회원들이 자진해서 한달 2백원씩 월례회비를 내는데 그것도 모임의 준비에 다 씁니다. 아마 수강료 받지 않고 글씨 공부하는데는 전국에서도 봉강서도회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박선정(54) 회장의 자랑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소헌의 인품을 침이 마르게 추켜올린다.

현 80여명의 회원 중엔 2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부자(父子), 모녀(母女), 형제자매 등 무척 다채로웠다. “그렇게 이질적(?)인 모임이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는 어느 모임에 못지 않게 잘 지켜지고 있다” 고 했다. 창립 무렵부터 8년째 회원이라는 김석환 씨의 자랑이다.

봉강서도회는 소헌을 정점으로 글씨만 쓰는 것이 아니라 예법(禮法)을 서로 익힌다고 했다. 옛날의 서당같은 분위기에서 서로 허물없이 충고하고 기예(技藝)로서 글씨 공부보다는 서로의 인격(人格) 수양(修養)을 보다 중요시 한다고 했다. 회원들은 서도를 통해 바야흐로 허물어져가고 있는 우리의 고유미(固有美), 전통미(傳統美)를 지켜 보겠다는 사명감(使命感)에 투철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중 략>

“10리의 동행(同行)도 전생의 연분이라 했거늘 우리들 번잡한 진세(塵世)에 처하여 서로 자리를 같이해 세상의 번뇌를 잊고 예도(藝禮)를 지향하는 것이 어찌 연분이 아니리요. 난정(蘭亭)의 성사가 천고에 향기를 남겼다면 봉강(鳳岡)의 모임도 천고에 날개를 펼침이 되리라. 동성에 서로 응하고 동기에 서로 구하노니 앞으로 우리의 모임이 인원이 늘고 예도가 높아져 오랜 뒷날에 길이 자취를 남기기를 서로 원하고 힘써야 할 바이다” 이수락 회원은 이렇게 매듭을 지었다.(泰)」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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