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신공항 논란의 야만성
동남권신공항 논란의 야만성
  • 승인 2019.06.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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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공공선택학파 이론을 창시한 제임스 뷰캐넌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의회민주주의도 실상은 민주주의라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치인은 국가의 이익과 지역의 이익이 상충(trade-off) 되면 선거를 의식해 스스럼없이 지역의 이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도 기업인들처럼 정치적 이익과 권력의 극대화라는 이기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 대구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위천국가공단 무산이라는 뼈아픈 경험이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건설교통부는 부산·경남 지역의 낙동강 오염에 따른 민원을 이유로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지연시켰다. 대구시는 어려운 재정여건 속에서도 낙동강 수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1조 원 이상을 투자해 전국 최초로 하수처리율 100%를 달성하는 등 모든 요구사항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부산·경남지역의 반발로 국가산단 지정이 지지부진하다가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무산되었다. 대구시는 산업용지 부족으로 해외투자기업과 첨단기업 등 대기업을 유치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또한 지역 기업의 역외 이전이 심화되면서 지역의 산업기반이 악화되었다.

위천국가공단 무산의 악몽이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21대 총선을 10개월 앞둔 미묘한 시점에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다시 부상한 것은 기존의 동남권 신공항을 흔들고 가덕도 공항으로 이전하기 위한 ‘보이는 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토부는 동남권 공항 문제는 이미 김해신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사항이므로 부산·울산·경남의 재검증 주장을 일축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및 이낙연 국무총리가 잇따라 검증의향을 밝히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와 전격적으로 만나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 김해신공항의 적정성에 대해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결과에 따르기로 한다”고 합의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노무현 정부때 처음 언급된 이후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이 최대 현안으로 선거때 마다 핫이슈로 등장했다. 2007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대통령은 신공항 건설을 위해 가덕도와 밀양을 최종 후보지로 좁혔지만 부산은 가덕도를, 대구·울산· 경남북은 밀양을 지지하면서 지역 간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정치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백지화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2016년 프랑스 파리항공단엔지니어링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정부는 새 공항 대신 기존 김해공항에 활주로 1본을 추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미 5개 지자체가 합의한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먼저, 정부 정책의 신뢰성 문제이다. 오래 논란과 국내외 객관적인 연구결과 김해신공항으로 결정했던 것을 부울경의 의견을 받아들려 총리실에서 재검토하자는 견해는 지역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김해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될 경우 부울경과 대구경북 간 정치적 갈등도 다시 커질 수밖에 없고, 총리실이 어떤 결론을 내려도 각 지자체들이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대형 국책사업의 결론을 뒤엎었다는 나쁜 선례로 남아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잃게 될 것이다.

둘째, 전문가의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접근방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 이런 방식은 어차피 얻지 못하는 표, 대구경북을 고립화 전략으로 소외시켜 정치적 이득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정치는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인데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여 특정 정치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시민들의 응집력 면에서 대구경북은 부울경에 크게 밀렸다. 부산시와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동남권 신공항으로 김해공항이 부적절하며 결국 가덕도로 가야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반면 대구경북은 남부권관문공항재추진본부(상임대표 김형기), 시민의 힘으로 대구공항지키기 운동본부(임대윤 대표), 그리고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등은 이번 결정에서 대구경북이 배제되었으므로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무효’라고 비판하지만,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해법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소포클래스는 “나는 그대의 맹세를 물위에 쓴다”라고 했다. 이 말을 정치인에 적용하면 국민에게 한 맹세는 그야말로 물위에 쓴 것과 같다는 의미일 수 있다. 정부 여당이 정치적으로 절박하다 해도 지역의 논리보다는 공공의 질서와 보편적 가치가 먼저 정립돼야 한다. 이런 정치환경을 이용해 지역의 현안사업을 해결하겠다는 사회는 양육강식의 정글일 뿐이며 또 다른 적폐의 대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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