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 속의 음악
[문화칼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 속의 음악
  • 승인 2019.06.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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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1992년 5월 27일 사라예보의 한 가게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 순간 거기에 포탄이 떨어져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고 내전에 휩싸인 사라예보에서 많은 비극이 벌어졌지만, 특히나 이 사건에 충격과 슬픔을 느낀 한 사내가 다음날 포탄이 떨어진 그 시각 오후 4시, 바로 그 장소에 나타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저격수에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22일간이나 연주를 계속했다. 그는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Vedran Smailovic)였다.

자원과 종교 그리고 민족 간의 갈등과 헤게모니 장악 등으로 근세에 와서도 수많은 비극적 전쟁이 있었다. 그중 유고 내전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써 우리에게 더 잔인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독한 전쟁 중에도 용기를 가진 한 사내의 연주로 인해 잠시나마 총성이 멈추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이 일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게 된다. 미국의 반전가수 존 바에즈는 이듬해 사라예보를 방문해 스마일로비치를 만나 국제적 주의를 환기시키고, 시민들을 위로 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와일드(David Wilde)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무반주 첼로 곡을 작곡했다.

이곡은 1994 맨체스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 세계적 연주자 ‘요요 마’에 의해 초연되었다. 조용히 시작된 곡은 죽음 직전의 한숨처럼 잦아들며 끝을 맺었다. 연주를 끝낸 요요 마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객석의 누군가를 가리키듯 손을 뻗었다. 거기에는 그 사람,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마일로비치’가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다가가 힘찬 포옹을 나누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은 두 사내를 향해 그제 서야 모든 관객도 함께 감격의 눈물 속에 힘찬 기립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접한 캐나다 출신 소설가 스티븐 갤러웨이(Steven Galloway)는 동명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다. 사라예보의 비극 가운데 꽃핀 용기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 일상이 죽음의 경계선이 되어버린 사라예보 시민들의 모습을 매우 리얼하게 담았다. 용기와 자존심을 가진 사람으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감동적 역사가 이 책 덕분에 온 세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아울러 한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더 깊이 사랑받는 계기가 되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가 비극의 현장에서 연주 했던 바로 그 곡이다.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 음악 학자이자 작곡가인 레모 지아조토(Remo Giazotto)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인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몇 마디의 선율과 베이스 라인 그리고 일부 화음표시를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그는 이것으로 오르간을 바닥에 깔고 2개의 현악기가 연주하는 트리오 소나타 형식의 곡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를 만들었다. 오늘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로 불리는 곡이다.

이 작품은 그 출처가 의심된다, 알비노니와 관계없다, 지아조토의 순수한 창작이다. 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바로크 시대의 음색을 가진 이 아름다운 음악은 오늘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나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덕분에 평화를 염원하는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원작 외에도 오케스트라 버전, 첼로 협주곡 그리고 성악곡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호세 카레라스도 노래를 남겼지만,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 쥬제페 쟈코미니의 노래가 나에게 와 닿는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의 조그마한 성당에서 녹음한 쟈코미니의 이 노래를 듣노라면 엄청난 소리의 폭풍 속에 가득한 ‘거룩함’이 가슴으로 물밀 듯이 밀려온다.

어느 고요한 휴일의 한 낮.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그날 그 음악은 나에게 ‘고귀함’이란 이런 거야라고 말 하는 듯 했다. 잊고 살았던 거룩함, 고귀함에 대하여 이것은 나에게 꾸짖듯 내 마음속에 파고든다. 그래봐야 사흘도 못가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또다시 잊어버리겠지만, 이 음악은 언제나 거룩함과 고귀함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가 단순히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그들을 위한 추모의 뜻으로만 이 곡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음악이 가진 힘을 그는 너무나 잘 알았던 것 같다. 잃어버린 인류애를 찾으라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통하여 음악의 언어로 절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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