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면신례(免新禮)
<대구논단>면신례(免新禮)
  • 승인 2010.03.2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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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3월도 어느덧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화사한 봄꽃들이 지천에 피고 있다. 3월은 학교나 회사 등 여러 분야에서 새내기가 들어오는 시기이다. 새내기가 조직에 빨리 적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선임자와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친해지는 방법이 보통 새내기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강요하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랑스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그랑제콜의 `비쥐타주(bizutage)’에서는 길거리 동냥하기 등 온갖 고통을 주는 신입생 길들이기로 유명하다. 인도의 대학에서 행하는 `래깅(Ragging)’에서는 속옷차림으로 거리 활보하기 등 각종 방법이 동원된다. 우리나라 역시 대학에서 선후배의 친밀감을 더한다는 명목으로 기합이나 강제로 술을 먹이는 일명 `영차식’이 있다.

필자 역시 20여 년 전 고통이 지금도 기억난다. 신문에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니 분명 제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어느 시대든지 존재하는데,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 후 관료가 된 신출내기에서 면신례에 대해 잘 설명한 책이 박홍갑의 `양반나라 조선나라-가람, 2001’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고식’이라는 용어는 일제의 군국주의 산물이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느 사회, 시대, 조직이든 간에 신참에 대한 통과의례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통과의례 중 하나인 성인식-할례(割禮), 번지점프의 유래가 된 높은 곳에서 나무껍질에 몸을 묶어 뛰어내리는 것-이나 결혼식 전날 친척 장정에게 호된 고통을 당하는 일명 `동상례(東床禮)’로 불리는 `신랑 다루기’도 새 구성원에 대한 일체감의 발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선시대에 힘든 통과의례는 문과 급제자가 배속되는 사관(예문관·성균관·교서관·승문원)의 면신례였다. 과거에 급제하거나 처음 관직에 나아가는 자인 `신래(新來-신출내기)’에 대한 통과의례는 과히 상상 이상이었다. `경국대전’에 “신래를 괴롭히는 자는 장 60에 처한다.”고 할 정도였다. 율곡 이이처럼 선배에게 불공했다는 이유로 파직된 경우도 있었다.

처음 관직에 나아가면 `허참(許參-집단에 참여를 허한다)’이라는 `허참례’에서 신출내기는 기존 관원에게 음식을 대접함으로서 조직의 구성원이 되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이후 `면신례’라고 하여 신래를 면하게 해주는 의식이 끝나야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모임은 현임 장관이 주도가 되어 현임·전임 관료들까지 모두 참석하는데, 그 명부를 `선생안’이라 한다. 이 `선생안’은 자기들만의 결속력의 상징이며, 일종의 동료 의식을 가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술자리에서는 술과 신출내기를 희롱하는 온갖 잡희가 동원된다. 그 중 `거미 잡이’를 보면, 시커먼 부엌 벽에서 거미 잡이 시늉을 시킨 후 손 씻은 물을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이것은 공인된 행위였다. 이 행위는 고려 말 권문세가의 어린 자제들이 관직에 나오자 선배들이 교만함을 꺾기 위하여 나온 풍속이라 한다.

이 행위에 대한 반대 의사도 많았지만 신출내기로서는 권지(權知-수습사원)를 통과해야만 해당 관서의 관원이 될 수 있었고, 승진 역시 허참의 순서에 따르니 따를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매일, 매달, 계절마다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데 그 비용 역시 엄청났다.

이러한 절차는 처음 관직에 나가는 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직에 옮겨갈 때도 해당되었다. 대표적인 관직이 이·병조의 낭관이나 사헌부 감찰이다. 이·병조의 낭관은 문·무관의 인사권을 장악한 관직이고, 사헌부 감찰은 백관을 규찰하는 관직으로 두 관직은 관료사회의 핵심 요직이다. 핵심 관직일수록 정도는 더 강했다.

또한 관직을 이동할 때 관직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상회례(相會禮)를 하지 않으면 상관을 욕보이기 일 수였다. 이 방법은 여러 관서로 옮겨갔고, 지방 양반까지 이어져 생원·진사 합격 후 선배 합격자에게 면신례하는 풍속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면신례는 한 사람이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이다. 이것은 경제적 폐단도 있지만 관원들이 왕에게 올바른 공론을 강조할 때 물러서지 않는 힘이 되기도 하였다. 관직을 버려도 양반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들만의 방법이었다.

과연 통과의례가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고 해도 과도한 술은 문제다. 요즘 같은 다양한 정보화 사회에서는 조선시대와 같은 방법은 옳지 않다.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는 새로운 면신례가 필요하다. 시대에 맞는 친밀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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