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를 씹다
공터를 씹다
  • 승인 2019.06.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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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이젤 하나 앞에 두고 쪼그리고 앉아
비 맞아 얼룩진 캔버스를
나, 지긋이 바라보는 동안
발 칭칭 붕대로 동여맨 사내가
부슬비 아래서 걷는 법을 새로 익히고 있다

절름절름 그 사내는 붓끝으로 도레미 화음을 맞춘다.
땅은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추억이 일어나는 건반
튀어나오는 비의 간주를 섞어보지만
그려지는 얼굴은 빗금 추상화
허공에 첫발 내민 빗방울 무게를
슬그머니 사선으로 그려 넣는다.
재활병원 뒤편 공터
누가 심어 둔 것인지 노란 소국도
자신을 적실 비의 심장 그려 달라 한다.
물감 듬뿍 찍은 붓으로 구름 눈시울 문지르는 공터
파르르 떨리던 국화 꽃잎이
너울너울 흔들리는 당신에게로 건너간다.
아파서 신앙이 된 골고다 언덕이라도 오르듯
젖은 맨발의 음표를 동동 띄운다.

◇문근영(文近榮)= 1963년 대구출생, 효성여자대학교 졸업, 열린시학 신인작품상(15), 눈높이 아동문학상에 동시 ‘눈꺼풀’ 외 15편당선(16),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나무’ 당선(17),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18),신춘문예 당선자 시인 선 당선,금샘 문학상 당선.

<해설> 저 공터를 씹고 있는 사내는 누구일까? 캔버스 위에 그려질 공터 또한 무슨 배경이 될 수 있을까?

백색의 공터인 캔버스에 우리는 다종의 기원과 이타의 수혜를 쉼 없이 그리게 된다. 삶이란 커다란 캔버스요 공터이기도 하다. 최초 인생이기도 하다. 거기에 지혜의 붓으로 그려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요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詩)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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