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기억은 여전히 사투 중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기억은 여전히 사투 중
  • 김광재
  • 승인 2019.06.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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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이자 미국 이민 작가
각 참전국 사람들의 기억 살펴봐
경계에 놓인 그에겐 중요한 과제
전쟁기념관 설명·영화 각색 등
기억 재구성하는 한국도 조명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기억하고
우리 안의 비인간성을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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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부희령 옮김/출판사 더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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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시 순국선열 묘지.

“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는 발상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전쟁은 처음에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두 번째로는 기억 속에서 싸운다.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이런 주장을 입증할 수 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더봄 2019)의 저자 비엣 타인 응우옌은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그는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사이공이 함락되던 네 살 때 보트피플이 되어 미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미국인으로 교육받고 자라면서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베트남 이민자들을 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미군에 의해 베트남인들이 살해당할 때 환호하는 관객들 속에서는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또 그의 부모는 원래 북베트남 출신인데 남북으로 분단된 해인 1954년에 남베트남으로 내려왔다. 그에게는 이른바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 끼어들었던 우리는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또 그보다 먼저 일어난 6.25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기억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 미국, 한국, 캄보디아 등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나라를 둘러보고 각자의 전쟁에 대한 기억을 살펴본다. 제5장에서 저자는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베트남인이 한국을 생각하는 속마음’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그는 한국의 전쟁기념관에서 비전투병에 붙은 설명에 주목한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 군대는 공익서비스 향상과 개발사업에 기여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은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공정하고 친절하다는 명성을 얻었다.’ 그렇지만 베트남인은 일반적으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남베트남인들도 한국인에 대해 그다지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베트남공화국의 공군사령관이자 부총리였던 응우옌 까오 끼는 한국 병사들을 부패와 암거래로 고발했다고 한다.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스틸 컷.

그리고 ‘하얀 전쟁’에서 ‘국제시장’에 이르기까지 영화들에서 한국인들이 기억을 수정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음을 간파한다.

“한국인들은 영화 속에서는 인간이지만, 심지어 피해자이기도 하고, 진정한 악당인 미국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대리 전사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한국전쟁에 대한 영화들로 기억을 재구성한 것을 보면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미국과 냉전 정책에 ’희생된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국 영화 ’그랜토리노‘가 몽족 소년과 백인 노인 사이의 우정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도움이 필요한 어떤 아시아인도 미국의 도움을 받게 되리라는 암시”라면서 “이렇게 구원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와 폭력을 지워버리고, 미국이 완성한 눈부신 장르인 영화를 도구로 아시아인의 폭력과 미국인의 자발적 희생이라는 장광설을 전파한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윤리적, 산업적, 미학적 측면에서 접근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것은 윤리적 측면이다. 즉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기억하는 윤리’이다. 저자가 경고하는 것은 전쟁기계에 포섭된 시민들이 결국은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난민 신세로 전락하거나, 영원히 멈추지 않을 전쟁의 지속에 일조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비인간성을 직시해야 하고, 우리가 인간인 동시에 비인간임을 맑고 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현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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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공화국 국립묘지의 얼굴이 훼손된 묘비.

전쟁을 겪은 세대가 사라져 가는 우리 사회는 다음 세대들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 책에서 참고할 만한 두 부분을 소개한다.

“좋은 전쟁 이야기는 소년 소녀들에게 병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준다. 그러나 아무도 전쟁이 치를 대가를 예상하거나 혹은 전쟁에 휘말려든 민간인, 고아, 미망인 혹은 난민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군대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영광스러운 죽음에 대한 환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지 절단, 전쟁 신경증, 설명할 수 없으나 점점 쇠약해지는 질병, 노숙생활, 정신병 혹은 자살, 병사들과 퇴역 군인들이 흔히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환상은 없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평화가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전쟁은 그 즉시 이윤을 제공한다. 우리의 두려움과 탐욕을 빌미로 냉소적인 전쟁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기억조차 무기화된 기억으로 전환할 수 있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나라를 위해 영웅적으로 희생하는 병사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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