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주 52시간제의 지혜
[이효수 경제칼럼] 주 52시간제의 지혜
  • 승인 2019.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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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지난 2018년 7월 1일부터 도입된 주 52시간제가 오늘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모든 업체에서 업종이나 직종 구분 없이 전면적으로 시행된다. 그동안 주 52시간 근무제에서 연장근로 한도를 제한받지 않았던 21개 특례 제외업종도 오늘부터 적용 대상으로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 멕시코 다음으로 긴 노동시간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몇 가지 측면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접근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올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 향상 전략과 함께 가야 하는데 이런 접근이 부족하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이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동시에 추진되면서 기업의 노동비용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것은 기업의 국내 투자의욕을 위축시키고, 동시에 노동절약적 경영전략을 확산시키게 된다.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 정책 목표 가운데 하나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일자리가 오히려 감소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주 52시간제를 시행해 본 결과 일부 저항이 있지만, 상당히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고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생각보다 저항이 크지 않은 것은 현재 300인 이상의 중견 및 대기업만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및 중견기업은 기업 및 근로자 모두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심지어 일이 없는데도 늦게까지 근무하는 장시간 근무 문화마저 있었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특히 대기업 사무직은 이런 장시간 근무 문화를 일시에 극복하고, 가족과 저녁을 먹고, 건강관리를 위한 운동을 하고, 미래를 위한 능력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주 52시간제의 문제는 내년에 폭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내년 1월 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체까지 확대 적용되고, 2021년부터 50인 미만 업체까지 전면 적용된다. 중소기업은 기업도 근로자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의 ‘2019년 상반기 금융 안정 보고서’에 의하면,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1미만인 중소기업이 3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중소기업이 무려 34%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비용 상승 압력을 흡수할 수 있겠는가? 근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근로자와 달리 중소기업 근로자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삶의 질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 근로자 임금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고, 연봉에서 초과 근무수당이나 특근 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소득의 감소는 불가피하게 된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생활비를 크게 줄이거나 투잡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면서 삶의 질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주 52시간제로 인해 내년에 한국 경제성장률이 0.3% 포인트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로 기업의 인건비가 9조 원 추가로 증가하고, 내수가 부진하고 대외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추가 인력을 고용하기보다 생산을 감축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진단한 것이다.

그래서 주 52시간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매우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용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확대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지난 2월에 이에 대해 합의를 했지만, 이 개정 법안은 국회에서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올 하반기에 내년 1월 1일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중소기업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파악하여, 기업 및 근로자 모두에게 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 기업은 근로시간 관리 혁신을 통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 근로시간제 등 유연 근로시간제를 적극 활용하여 근로시간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넷째 노동조합 및 근로자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이 있어야 자신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분명한 현실 인식을 갖고 근로시간 효율성 극대화 및 생산성 향상에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기업과 근로자는 신제품개발 및 연구개발의 시장선점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재량근로시간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기업은 근태관리 및 객관적 평가의 어려움을 들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지만, 창의적 임금체계를 설계하는 등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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