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 풍경
까치집 풍경
  • 승인 2019.07.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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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의 잔고를 찾으러 ATM

기기 앞에서 카드를 밀어 넣는다.

문자가 시키는 대로 명령어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

로또처럼 돌아가는 부푼 헛바퀴에서 밀어내는 기기의 배설물.

삶이란,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를

지키는 아찔한 차선이나, 노동으로

지불되는 통장의 아라비아 숫자.

베란다 창 너머 겨울 한파에도

꿋꿋이 제 자릴 지키는 벗은 나무들의

참회의 기도.

한 입 또 한 입, 새들이 물어 나르던

길바닥 쓸쓸한 나뭇가지들이 만든,

저 굳건한 힘의 완급.

바람 불어도 함께 흔들리며 허공을 부여잡는,

겨울나무 위 축구공처럼 살포시 얹힌 허전한 듯,

속이 찬 까치집 풍경.

◇차승진(車勝鎭)= 한국문인협회 회원, 아세아 문예 신인상, 월간 모던포엠 단편소설 신인상, 낙동강문학 동인, 소설 ‘숨겨둔 이브’에게 출간.

<해설> 한때 우리는 까치둥지 뒤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만치 어려운 살림살이로 힘겹게 산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참회의 기도 없어도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다. 길바닥 쓸쓸한 나뭇가지 힘의 완급에 따라 허공을 부여잡고 허전한 듯 나목 위 속 찬 까치둥지 뒤지지 않아도 카드 한 장이면 족한 참 좋은 세상에 산다는 반성적 애상미가 흐른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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