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물건’ 스스로 자른 백성…폭정시대의 슬픈 자화상
제 ‘물건’ 스스로 자른 백성…폭정시대의 슬픈 자화상
  • 이대영
  • 승인 2019.07.0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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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낳은지 3일 만에
나라의 군적에 올려놓고
관아에서 소까지 뺏어가니
울분 못이겨 성기 ‘싹둑’
아내가 관문서 통곡해도
문지기는 호랑이 같을 뿐
사연 전해들은 정약용 선생
한시 ‘애절양’ 지어 슬픔 승화
신택리지-애절양
정약용이 1803년에 지은 ‘애절양’ 시를 읽고. 그림 이대영
 

이대영의 신대구 택리지 - (26) 실정의 질곡은 힘없는 백성의 몫

아놀드 조셉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1889~1975)의 저서 ‘역사의 연구(The study of history)’에선 “(대부분의 국가는 내분으로 자멸했지) 외침으로 멸망한 나라는 일부다”라고 돼있다. 또한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2.28~1637.2.24)을 당하고 난 뒤 국왕 인조(仁祖)가 “내분으로 나라의 기둥이 썩어 문드러지고, 외침으로 국가사직이 폭~싹 내려앉는다(以分腐國柱, 招外崩國社)”고 자탄했던 말이 실감난다. 이를 아주 완곡하게 표현하면 ‘국가는 내부적으로 쓰러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외부적인 칼로 숨을 거둔다(內分傷國, 而外敵喪)’라는 사실에 만시지탄(晩時之歎)한다. 그러나 인조는 ‘하얀 소복을 입고 목에 동아줄을 걸어 자기가 들어갈 관을 양처럼 끌고 가는(素服稿索牽羊)’ 초라한 모습으로 구고두삼배(九叩頭三拜)란 항복하는 예를 올렸다.

◇궁중에 경사가 나도 연못 물고기만 죽는다

중국 산동반도(山東半島)에 있는 태산(泰山)은 중국 제왕들이 하늘로부터 봉선(封禪)을 받고자 올랐다. 제왕에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몇 번이고 태산에 오른다.

BC 500년경 공자(孔子, BC 551~479)는 제자들과 태산을 오르다가 무덤에 한 부인이 슬프게 울고 있기에 제자 자로(子路)를 시켜 사연을 물었다. ‘몇 년 전에는 시아버지가, 일 년 전에는 남편이 이번에는 아들이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었다’는 사연을 들었다. 그런데 민가(民家)가 많은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 자로(子路)는 공자에게 되물었다. ‘노나라 말 계손자(季孫子)의 혹정으로 고통을 받는 것보다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것을 택했다’고 공자가 자로에게 설명했다. ‘백성들에게는 혹정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於猛虎)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태산 산정까지 올랐다.

맹자(BC 372~289)는 “공자님께서는 ‘동산(東山)에 오르면 노나라가 작게 한 눈에 보인다더니, 태산에 오르시니 천하가 작게 눈 아래 보이더라’라고 하셨다. 300년경 ‘국가를 다스린 위정자(爲政者)들은 나의 실정책임이 아니라, 가뭄과 천재지변이고, 내가 죽인 것이 아니고 칼이 죽였다’고 해명을 하나, 결국은 칼로 백성을 죽이나 정치로 백성을 죽이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맹자(孟子)는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천재지변이든 인위적인 재앙이든 강한 자는 당하지 않고, 언제나 하류백성들만이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만다. 중국‘풍속통(風俗通)’에서는 ‘성문에 불이 붙으면 연못의 물을 퍼서 진화하기에 모든 재앙은 물고기만 다 덮어쓰고 죽음을 당한다. 심지어 궁중에 경사가 나도 맛있는 물고기 반찬이라고 연못 물고기만 죽는다(城門失火, 禍及池魚, 宮中有慶, 饌用池魚)’고 했다.

◇대구의 잃어버린 20년(The Two Decades of Daegu)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지난 5월 8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1998년부터 2018년까지 20년간 대구와 전국경제를 비교분석해 ‘대구경제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 마디로 1인당 GRDP 26년째 전국 꼴찌 정도는 대구시민이라면 다 알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이란 용어는 일본경제의 장기적 침체현상을 자성하는 목소리로만 알고 있지만, 대구지역에서도 건전한 위기감 정도는 갖고 잃어버린 20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한번쯤은 절실히 자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018년 현재 246만1천769명의 인구로 전국구성비 4.8%,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7위이고, 2017년 현재 대구시 총생산량(GRDP)은 50조 7천690억 원, 전국대비 2.9%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1위, 1인당 개인소득은 1천756만8천 원으로 전국 7위, 사업체수는 2017년 현재 20만 9천376개 업체로 전국의 5.2%이나 매출액은 177조6천91억 원으로 전국의 3.0%에 해당한다.

사업체당 연간매출액은 8억4천800만 원으로 제조업 기반이 없는 강원도와 제주도를 제외하면 꼴찌다. 수출규모도 2018년 81억 달러, 전국대비 1.3%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2위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분석된 건 i) 저부가가치 중심의 산업구조를 탈피하지 못했고, ii) 신(新)성장 동력산업 육성에 소홀했다. iii) 이외에도 보수적이고 위험회피적인 경영전략이 제시됐다.

이 보고서를 본 소감은 한 마디로 명나라 학자 고염무(顧炎武), 1613~1682)가 ‘국가흥망은 사람마다 각자에게 책임이 있다(國家興亡, 人人有責)’고 말한 구절이 생각났다.

물론 대구지도자들은 할 말씀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식상한 TK 홀대론으로 해명하고자 한다면, 속칭 TK집권시대는 승승장구했는가? 반문에 답변이 어려울 것이다. 궁색한 답변보다 이왕에 같이 자성하고 앞으로 똑소리나게 미래먹거리를 챙기자는 합심만이 최선책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 가운데 서경(書經)은 ‘하늘에 지은 죄는 쉽게 피할 수도 있으나, 자기 자신을 속이고서는 살 수 없다(天作孼猶可違, 自作孼不可活)’고 했다. 또다시 우리 스스로를 속이거나 죄를 짓고서는 살길보다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실정질곡(失政桎梏)을 짊어졌던 선인들의 참혹상

실정(失政)에 대해 선인들이 했던 막말 혹은 욕설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간절함을 전하고자 당나라 백거이(白居易,772~846)의 시(詩) ‘숯 파는 노인(賣炭翁)’과 조선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1803년에 지었다는 ‘억울함이 북받쳐 내 물건을 자른다(哀切陽)’시(詩)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무 배어 남산 기슭에서 숯을 굽기에 얼굴 한 가득 재와 연기로 그을렸네. 부스스한 양쪽머리 새까만 열손가락. 숯 팔아 번 돈 뭐에 쓰려하오? 몸에 걸치는 옷하며 입에 풀칠하는데. 가엽게도 몸에 걸치는 단벌에도, 숯 값 걱정에 날씨가 춥기를 바랄뿐이라네... 말 타고 나는 듯이 오는 두 사람은 어느 높으신 분이기에, 황색관복은 흰옷 심부름 아이에게, 손으로 문서 쥐고 칙령이라고 소리치며, 수레 돌려 소를 몰아 북으로 끌고 가네, 수레 가득 실은 숯은 무게만도 천근인데, 궁중관리 몰고 가니 아깝다고 말도 못해. 붉은 베 반 필에 한 자락 비단으로, 소머리에 걸쳐놓고 숯 값이라 큰 소리네.’

강진(江津)에서 직접 목격한 이야기로 “갈대밭(蘆田)에 사는 한 가난한 백성이 아들을 낳은 지 3일 만에 군적에 올렸다고 관아 이정(官衙里正)들이 소를 빼앗아 가니 슬픔이 북받쳐 자기 물건을 자르면서 ‘이것이 문제로 곤액(困厄)을 당한다.’하자, 아내 역시 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물건을 들고 관아에 와서 울며 하소연했으나 관아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다산선생님은 이를 시로 지었다고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적고 있다. 오늘날을 같이 사는 아버지로서,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에게 대학교육, 일자리, 주택, 결혼 및 출산문제까지를 부담시키는 게 황구첨정(黃口簽丁) 이상이다. 애절양 충분한 사연이지만 용기가 없어 이렇게 붉은 얼굴로 시만 옮겨 적는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네가 길게 슬프게 우는 소리,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가, 하늘 보고 울부짖네. 출정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 사내가 제 물건을 잘랐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네.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하소연 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里正)들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남편이 낫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온방에 흥건하네. 스스로 부르짖기를 ‘아이 낳은 죄로구나!’... 사대부 양반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리며 흥청망청, 그들은 세금이라고 쌀 한 톨, 베 한 치도 내다바치는 일 없네.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도 불공평한가? 창밖에 우두커니 앉아서 시경(詩經)의 ‘뽕나무에 앉은 뻐꾸기는 새끼가 일곱 마린데’ 구절만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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