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미봉남(通美封南)을 우려하며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우려하며
  • 승인 2019.07.0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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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행정학 박사
객원논설위원
통미봉남(通美封南), 봉미통남(封美通南)은 북한이 미국과의 교섭에 있어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전술의 하나이다.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가 걸린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 정부는 해결을 위한 교섭의 직접 당사자가 되지 못하고 미국과 북한만이 교섭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참담하다.

우리 정부의 주선으로 최초로 미국과 북한 간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나, 제2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양국 간에 대화 및 협상을 주선한 우리 정부만 곤란한 지경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에 따라 남북 공동유해발굴 작업,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 앞서 합의해놓은 사항들이 줄줄이 무산되는 등 오랜만에 호의적이던 남북 관계만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G20 정상회담 이전에 정상회담을 추진하였지만, 북한으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심지어 북한은 일개 국장급을 내세워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너희는 빠지라”는 식으로 우리 정부를 모욕하기까지 하였다. 북한으로서는 이미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대북제재 해제와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미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 정부를 통해 미국에 자신의 뜻을 전달할 필요성이 없다는 전형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분통이 터질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6월 중순이후 미국과 북한은 친서를 교환하는 등 다시 양국 간에 물밑 접촉이 하는 것 같더니 6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을 앞두고 트위터에 “만약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북한 김정은이 이 트위터를 본다면, 그와 DMZ에서 만나 손을 잡고 ‘안녕’이라고 인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후 약 1시간 만에 북한 측으로부터 반응이 있었고, 그 결과로 6월 30일 세계적인 빅 이벤트가 판문점에서 일어났다. 이 이벤트에 대해 전 세계가 북핵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것처럼 장밋빛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북) 제재는 유지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협상 중 어느 시점에 어떤 일들(things)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왠지 찝찝하다. 여기서 어떤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그 이유는 최근 북핵과 관련해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말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번 판문점 회담이후 트럼프의 발언 또한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보다 한층 유연해진 표현이라는 점이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 방식을 두고 완전한 북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nuclear freeze)을 꾀할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하였지만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인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일괄타결식 비핵화 전략을 포기하고 점진적으로 즉 빅딜(핵 완전 폐기)이 아닌 스몰딜(핵 동결)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점을 국내외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이 새로운 핵물질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핵시설을 폐쇄하고 그 대가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식으로 양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북 회담, 미·북 회담 등의 목적과 핵심은 북한의 핵 폐기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핵무기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며, 또 그 위험을 축소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핵 동결’이 100%는 아니어도 미국이 용인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동결이 되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로서는 북한의 핵 인질, 핵 포로로 전락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정부의 대미 외교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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