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서 만난 고려인 여성들
중앙아시아에서 만난 고려인 여성들
  • 승인 2019.07.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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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다문화사회연구소장·교육학 박사
옛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나라 카자흐스탄에서 육로로 국경선을 통해 비자를 받고 키르기스스탄의 휴양지에 도착했다.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호수로 알려진 ‘이스쿨 호수’의 경치는 우리 일행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만년설산이 보이고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바다 색깔의 조화는 신이 내린 아름다운 자연의 극치였다.

우리 일행의 통역을 맡은 ‘마따라’ 라고 불리는 60대 초반의 여성은 고려인 2세였다. 나이에 비해 젊고 아름다운 그녀는 활달하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우리들을 기분 좋게 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처음 카자흐스탄 땅에 도착했을 때, 외모가 한국사람하고 똑같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중앙아시아에서 만난 첫 번째 고려인이었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지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일행들 중에 한국인으로 착각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여성들이 간간이 눈에 띄기도 했었다. 오래전에 키르기스스탄의 여성과 한국인 남성을 결혼시켜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여행지 내내 고려인 여성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른 아침에 호수를 산책하면서 고려인의 슬픈 이주의 역사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겼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소련의 극동지역 연해주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려 중아아시아의 불모지 땅에 버려졌다. 그들은 농기구 하나 없이 맨손으로 땅을 파고 토굴에 숨어 살았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카작인에게 양을 몇 마리 얻어 유목민의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 황무지를 개간했다. 황무지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기적을 일구어온 그들을 카작인 들은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마따라’ 의 양해를 얻고 고려인과 카자흐스탄의 결혼 문화에 대해 영상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수년 전에 이혼을 했고, 큰딸은 비즈니스를 하고 둘째 딸은 의사라 한다. 딸들이 효녀이고 성공한 케이스라 ‘마따라’는 다른 고려인 여성에 비해 여유도 있고 자유로워 보였다. 고려인들이 농사도 잘 짓고 정직하고 똑똑해서 이 나라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모두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타민족으로서 이방인으로서 눈치 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인정받고 카자흐스탄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인의 기질을 카자흐스탄인들은 좋아했다.

‘마따라’도 두바이나 몽고, 중국 등을 딸들과 함께 여행했다고 자랑했다. 카작인 들은 국민소득이 만불이 되지 않지만, 정신문화나 의식 수준은 선진국에 가까웠고 행복지수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었으나 히잡을 슨 여성들을 거리에서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이유인즉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대통령이 착용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나라도 갈수록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결혼도 프랑스처럼 두 사람이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축하의 파티를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마따라’의 딸들이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여행지에서 만난 두 번째 고려인은 엄마랑 같이 온 고려인 3세인 여고생 두 명이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에 대해 무척 친절하고 호감을 보였다. 한국어를 배운 지가 5년이라는데 외모도 언어도 흡사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으로 유학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소녀는 아빠는 고려인 2세이고 엄마는 카작인 인데, 엄마가 한국인 통역이라 했다. 아빠는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 해서 우리 일행을 폭소케 했다.

카자흐스탄에도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글학교가 50여 개나 된다 해서 우쭐했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고려인들이 낯선 땅에서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통역 ‘마따라’와 포옹을 하고 폰번호를 주고 받으며 내일이라도 또 만날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태양빛에 익은 과일이 설탕처럼 혀를 녹였던 카자흐스탄은 한동안 기억 속에서 맴돌리라. 중앙아시아에서 만난 그녀들은 우리들의 옛 누이였고, 자랑스런 한민족의 뿌리를 낯선 땅에서 내린 훌륭한 고려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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