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내가 내린 결정, 그 감당해야 할 무게
'칠드런 액트' 내가 내린 결정, 그 감당해야 할 무게
  • 배수경
  • 승인 2019.07.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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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보단 늘 이성을 따르는 판사
신념으로 치료를 거부하는 소년
각자의 삶에 파장을 이끈 두 만남
엠마 톰슨의 섬세한 내면 연기
감정과 맞물린 OST…몰입도↑
칠드런액트-33
 

“아무래도 나 바람 피울 것 같아” 일에 몰두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편 잭(스탠리 투치)이 폭탄선언을 한다.

가정법원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는 남의 집 가정사는 누구보다 명쾌하게 잘 해결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사는 이성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신앙에 어긋나는 수혈을 거부하는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에 대한 판결이 그녀 앞에 놓여진다.

 

칠드런액트
 

이틀 안에 수혈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소년과 부모는 수혈을 거부한다. 애덤의 나이는 만 17세 9개월. 영국의 법에 따르면 만 18세가 되어야만 스스로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칠드런 액트(Children Act)’는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아동법’을 뜻한다.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보다 앞서 피오나는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샴 쌍둥이’ 재판에서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곳이라는 소신으로 샴 쌍둥이 중 하나를 살리는 결정을 내린다.

이렇듯 늘 감성보다 이성이 앞섰던 피오나가 판결에 앞서 애덤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기로 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병원을 방문한 그녀는 애덤에게 수혈을 받지 않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부작용과 앞으로 펼쳐질 삶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알려준다. 결국 이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혹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질 거라 예상했던 영화는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피오나에게는 일상적인 판결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선택으로 삶이 바뀐 소년은 그날 이후 그녀 곁을 계속 맴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답을 찾아 끊임없이 그녀를 찾아오는 애덤을 스토커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의 등장으로 그녀의 내면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칠드런액트
 

그날 병원을 찾지 않고 판결만 내렸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그의 기타 연주에 맞춰 예이츠의 시로 된 노래를 부르지만 않았더라도 다른 결말로 이어졌을까? 피오나는 자신의 결정이 소년에게 최선이기를 바랐으나 결국은 예기치 못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제 선택이예요. 마이 레이디”라는 애덤의 마지막 말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영화는 판사가 누군가의 생과 사를 가를 수도 있는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그의 삶까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그와 더불어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선택에 관한 질문이 더해진다.

 

칠드런액트
 

우아하고 지적이면서 섬세하게 일렁이는 피오나의 내면을 엠마 톰슨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토록 잘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훌륭하다.

영화 시작부터 피오나의 감정과 맞물려 잔잔히 흐르는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이나 그녀가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다운 바이 더 샐리 가든(Down by the Sally Garden)’같은 OST도 영화와 잘 어우러져 몰입도를 높인다.

‘칠드런 액트’는 ‘어톤먼트’나 ‘체실 비치에서’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이언 매큐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자는 이 소설을 쓰고 감독에게 직접 영화화를 제안했다. 원작자가 직접 각본과 각색을 맡은 만큼 원작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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