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 빼앗긴 땅따먹기 놀이공간
어른에게 빼앗긴 땅따먹기 놀이공간
  • 황인옥
  • 승인 2019.07.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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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아트피아 신진작가 민주展
변화하는 도심의 풍경 기록·수집
재개발 직전 모습 담은 ‘땅따먹기’
아이들 ‘놀이’ 어른의 ‘땅 투기’로
현시대 속도·도시와의 소통 문제
관찰자적 시선으로 담담하게 기록
민주작-땅따먹기
민주 작 ‘땅따먹기’.

‘빠르거나 느리거나’의 속도 차이만 있를 뿐,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의 속도로 체급을 매긴다면 현 시대는 슈퍼헤비급. 기술발전과 패러다임의 변화 속도가 브레이크 없는 폭주처럼 가파르다. 그러나 빠른 속도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소외, 우울, 높은 자살률 등은 대표적인 멀미 현상이다. 시골 태생이지만 도시에서 성장한 청년작가 민주에게도 변화는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급변하는 도심을 둘러싼 매끄럽지 못한 소통의 문제를 예술적인 화두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지만 기본 주제는 도시와의 소통 문제죠. 이 문제를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해요.”

작가 민주가 스스로를 ‘수집가’라 했다. 도시의 소통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수집’을 선택한 것. 작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도시인의 자화상이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현대인의 몸부림과 그로인한 불안, 개발이라는 미명하게 찢겨져 나가는 도시의 풍경 등 도시에서 벌어지는 부정적인 현상들을 사진이나 설문지, 금박지나 의자 테이블 등의 현대인의 삶과 밀접한 사물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시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어린 시절 살던 곳이 어느 날 송두리째 사라지고 새로운 환경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고 상실감이 컸어요. 낡은 골목에 대한 애착이 컸던 것도 아니었는데 인터넷에 남아있는 철거 전 옛날 지도를 찾아 캡처 했어요. 기록해 두고 싶었던 거죠.”

최근 개막한 수성아트피아 신진작가 발굴을 위한 기획전에 초대된 민주 작가의 전시제목이 ‘어느 반짝이 수집가’다. ‘수집’을 기초로 하는 작업들을 집대성한 성격의 전시다. “특정 시기의 도시 풍경이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것 같았어요. 저의 ‘수집’은 곧 ‘기억’에 해당되죠.”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은 ‘땅따먹기’. 재개발로 주민이 떠나간 을씨년스러운 동인동, 남산동, 읍내동 일대 재개발 직전의 풍경을 사진으로 수집·기록하고 다양한 형식의 설치작품으로 펼쳐놓았다. 동일한 사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잘라 이어 붙이거나 대형으로 인화한 사진을 조각조각 잘라 종이접기 해 벽면에 가득 붙이며 어린 시절 ‘땅따먹기 놀이’를 차용한다. 작가에게 현시대의 부동산 개발과 투기가 어린 즐겨 놀았던 ‘땅따먹기’ 놀이의 어른들 버전처럼 다가왔다.

작가가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의 땅따먹기 때문에 아이들이 땅따먹기 놀이 할 골목을 잃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아이들의 땅따먹기 놀이가 ‘분양권’을 받아 한 뼘씩 자신의 땅을 표시해가는 현대 어른들의 부동산 투기와 겹쳐졌어요. 우리의 놀이는 그저 놀이였지만 어른들의 ‘땅따먹기’는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죠.”

작품 ‘땅따먹기’는 이전 작품인 ‘도시산수’의 확장판이다. ‘도시 산수’의 사진을 오브제로 활용했다. ‘도시산수’는 작가 주변 특정 거리의 풍경을 다양한 오브제 재현하거나 작가와 무관한 도시인과 그들을 둘러싼 관계를 단편으로 쓰고 그 글의 일부를 무대 형식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도시 산수’ 이전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표현했다. 2016년 작 ‘잉여적 초상’가 대표적이다. 도시 이전에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 먼저 관심을 가진 것. ‘잉여적 초상’은 흰 티슈로 마스크를 떠낸 얼굴로 설치작품으로, 도시인의 건조한 얼굴과 메마른 감정을 표현했다.

작가로 살아온 지난 4년 동안 그녀는 초지일관 현대 도시의 자화상을 파고 들었다. 이때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집가. 작가에게 수집은 기록과 동의어다. 이를테면 자신을 도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위치로 상정한 것. “사관에게 주어진 역할은 관찰자적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볼 때 저 역시도 그런 시각을 견지하려 했어요.”

도시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이 전제로 깔린다. 하지만 작가는 비판적인 관점보다 자체를 담담하게 수집·기록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녀가 “누군가는 기억해 줘야 한다는 당위성의 발로”라고 했다. “도시가 변화할수록 달라지는 풍경들이 겹겹이 쌓여가죠. 변화 과정에 다양한 이야기가 축적돼 왔어요. 저는 그저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 변화들을 담담하게 기록으로 남기려 해요.” 전시는 14일까지 멀티아트홀에서. 053-668-1566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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