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주춤하고, 햇볕 따가운 한낮. 대단위 아파트 단지 내 상가건물이 밀집한 네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앳된 여성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버스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코 바라본 그녀는 한 평 남짓 조립식 테이블 위에서 머리핀과 목걸이, 팔찌 등 여성용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머리에는 챙 넓은 벙거지 모자를 쓰고, 짧은 핫팬츠에, 상의는 가느다란 두 줄의 끈으로 어깨가 연결되어 배꼽이 살짝살짝 드러나 보이는 민소매 티셔츠다.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어폰을 꽂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인지. 연신 고개를 까딱이며, 입으로는 달싹달싹 노래를 부르고, 두 팔과 무릎과 허리가 잠시도 쉬지 않고 리듬을 탄다. 가까운 헬스장에서 신나는 에어로빅이라도 하다가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 흥이 멀리 있는 나에게로 옮겨와 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손과 발이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래, 이왕에 나왔으니 지치고 우울한 표정보다는 밝고 유쾌한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웃는 얼굴에 대한 며칠 전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굵은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아침, 고속버스터미널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벗어나 환승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백화점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야 된다. 평소 걸음걸이가 빨라 지하철에서 나온 승객 중 내가 제일 앞에서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백화점 입구 쪽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어폰을 꽂은 채 바쁜 걸음을 옮기는 나를 향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용무로, 나에게? 그녀와 눈빛이 마주친 순간, 지레 갈등에 휩싸였다. ‘혹시 종교나 신용카드 또는 부동산 등과 관련된 일이라면, 못 본 척 외면을 해야지’라고 다짐했다.
돌아가거나 비켜가지도 못할 거리였다. 여성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나의 눈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작은 화면에는 “실례지만, 이 근처에 물건을 보관할 곳이 있나요?”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인 것 같았다. 다행히 보관함의 위치를 알고 있었으니, 따라오라는 몸짓을 했다. 그리고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왼편으로 보이는 물품보관함 쪽으로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 여성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I‘m from China.” 중국에서 왔다며, 밀린 숙제를 해결한 듯 경직된 어깨를 풀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대화를 이어보려는 듯 “Are you going to work?” 일하러 가는 중이냐고 물었고, 나는 “No, I’m going to travel.” 여행을 가는 중이라며 못내 아쉬움의 미소를 주고받았다.
나에게는 고속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여행이었으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있었더라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친절을 베풀 수도 있었을 텐데. 잠깐 동안의 일이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공연한 선입견으로 사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외면할 뻔 했으니, 부끄럽기도 했다.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곤하게 졸고 있는 학생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른해진다. 차분히 묵주를 굴리고 있는 어르신 옆에서는 나도 일념으로 기도를 하고 싶은 경건한 자세가 된다. 밝은 표정의 승객 앞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힘들고 피곤한 모습을 보면 나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병원에서도 그렇다. 미소를 짓는 의료진의 진료를 받으면 금방 병이 나을 듯한데, 화가 난 듯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의료진을 만나면 없던 병도 생길 것처럼 우울해진다.
감정 표현도 전염이 되는 모양이다. 웃음이 웃음을 낳고, 피로가 피로를 낳는 것 같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보니 행복해지더라는 말도 있다. 나의 표정 또한 누군가에게 거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얼굴 표정과 옷매무새를 다시 정돈해보고는 한다.
한 사람은 여러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여러 사람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표정을 관리하는 것은, 작은 노력으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 앳된 여성은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주었을지, 즐거운 상상에 젖어본다.
버스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코 바라본 그녀는 한 평 남짓 조립식 테이블 위에서 머리핀과 목걸이, 팔찌 등 여성용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머리에는 챙 넓은 벙거지 모자를 쓰고, 짧은 핫팬츠에, 상의는 가느다란 두 줄의 끈으로 어깨가 연결되어 배꼽이 살짝살짝 드러나 보이는 민소매 티셔츠다.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어폰을 꽂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인지. 연신 고개를 까딱이며, 입으로는 달싹달싹 노래를 부르고, 두 팔과 무릎과 허리가 잠시도 쉬지 않고 리듬을 탄다. 가까운 헬스장에서 신나는 에어로빅이라도 하다가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 흥이 멀리 있는 나에게로 옮겨와 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손과 발이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래, 이왕에 나왔으니 지치고 우울한 표정보다는 밝고 유쾌한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웃는 얼굴에 대한 며칠 전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굵은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아침, 고속버스터미널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벗어나 환승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백화점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야 된다. 평소 걸음걸이가 빨라 지하철에서 나온 승객 중 내가 제일 앞에서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백화점 입구 쪽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어폰을 꽂은 채 바쁜 걸음을 옮기는 나를 향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용무로, 나에게? 그녀와 눈빛이 마주친 순간, 지레 갈등에 휩싸였다. ‘혹시 종교나 신용카드 또는 부동산 등과 관련된 일이라면, 못 본 척 외면을 해야지’라고 다짐했다.
돌아가거나 비켜가지도 못할 거리였다. 여성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나의 눈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작은 화면에는 “실례지만, 이 근처에 물건을 보관할 곳이 있나요?”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인 것 같았다. 다행히 보관함의 위치를 알고 있었으니, 따라오라는 몸짓을 했다. 그리고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왼편으로 보이는 물품보관함 쪽으로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 여성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I‘m from China.” 중국에서 왔다며, 밀린 숙제를 해결한 듯 경직된 어깨를 풀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대화를 이어보려는 듯 “Are you going to work?” 일하러 가는 중이냐고 물었고, 나는 “No, I’m going to travel.” 여행을 가는 중이라며 못내 아쉬움의 미소를 주고받았다.
나에게는 고속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여행이었으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있었더라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친절을 베풀 수도 있었을 텐데. 잠깐 동안의 일이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공연한 선입견으로 사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외면할 뻔 했으니, 부끄럽기도 했다.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곤하게 졸고 있는 학생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른해진다. 차분히 묵주를 굴리고 있는 어르신 옆에서는 나도 일념으로 기도를 하고 싶은 경건한 자세가 된다. 밝은 표정의 승객 앞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힘들고 피곤한 모습을 보면 나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병원에서도 그렇다. 미소를 짓는 의료진의 진료를 받으면 금방 병이 나을 듯한데, 화가 난 듯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의료진을 만나면 없던 병도 생길 것처럼 우울해진다.
감정 표현도 전염이 되는 모양이다. 웃음이 웃음을 낳고, 피로가 피로를 낳는 것 같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보니 행복해지더라는 말도 있다. 나의 표정 또한 누군가에게 거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얼굴 표정과 옷매무새를 다시 정돈해보고는 한다.
한 사람은 여러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여러 사람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표정을 관리하는 것은, 작은 노력으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 앳된 여성은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주었을지, 즐거운 상상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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