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똥 된다
아끼다 똥 된다
  • 승인 2019.07.1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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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옛말에‘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좋은 물건을 너무 아끼다 보면 나중에 아무 쓸모 짝에도 없어서 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물건을 사놓고도 사용 못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사용하지 않고 아끼다가 나중에 쓸모없게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끼지 말고 잘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그런데 물건도 물건이지만 가만히 보면 우리는 말도 너무 아끼는 것 같다. 말에도 때가 있어서 아끼다 보면 시간이 지나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 수가 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적당한 때’라는 것이 있어서 그때가 지나버리면 의미가 약해지거나 퇴색되기 마련이다.

가령 잘못을 한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될 때가 있다. 쉽게 해결될 일도 “미안하다”라는 그 말 한마디 아끼다가 갈등이 더 깊어지고, 나중에는 진짜 용서가 안 되는 지경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미안하다는 말 아끼다 똥 된다.

열심히 일한 후 그늘에 앉아 한잔 시원하게 마시는 음료 한잔은 정말 지치고 힘들 때 큰 힘이 된다. 고맙다는 말도 비슷하다. 열심히 살아온 어느 날, 지치는 날이 찾아올 때가 누구나 있다. 그때 누군가 “당신 덕분이다. 고맙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진짜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 말도 우린 아끼고 아낀다. 돌아보면 살아오면서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배우자, 부모님, 형제들, 선생님, 친구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더 늦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고맙다는 말 아끼다 똥 된다.

얼마 전 다문화 가정의 부부 10쌍을 대상으로 부부 교육이 있었다. 남편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아내들은 먼 이국땅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사람들이다. 함께 여러 활동을 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심리적 차이를 설명하는 시간이 되었다. 남자는 눈(시각)이 발달해 있고 여자는 귀(청각)가 발달해서 남자는 눈의 정보를 많이 받아들이고, 여자는 귀의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인다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실습을 했다. 먼저 아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눠보았다. 아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예상대로였다. “사랑해” “고마워” “행복해” “예뻐” “수고 했어” 등의 아주 소소한 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말들이었다. 아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다음으로 남편들에게 아내들에게 ‘사랑해’라고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대부분이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못 하는 남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내들은 평상시 남편이 너무 표현을 안 해주어서 섭섭하다고 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말자. 아끼다 똥 된다.

어느 중환자실에서 임종 직전 남편이 아내를 급하게 찾고 있었다. 아내에게 무언가 못 다한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슬픔도 잠시,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숨겨놓은 통장이라든지, 땅이라도 있는가? 싶은 기대 반으로 남편의 입에 귀를 가져갔다. 그랬더니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남편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평생 같이 살면서 남편은 늘 과묵했고, 표현이 서툴렀다. 사랑한다는 말 왜 그렇게 아껴야만 했을까? 왜 마지막의 순간이 돼서야 할 수 있었을까? 아내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아끼지 않아도 되는 ‘힘이 되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말’을 너무 아끼고 있다. 마치 대단한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는다. 말은 처음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가 어렵지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러워지게 된다.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우리들의 청춘이고, 건강이며, 주어진 기회이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있을 때 맘껏 누리고 살자. 아끼다 똥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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