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권재희 “유럽이 요구하는 종합예술인 되고자 했죠”
테너 권재희 “유럽이 요구하는 종합예술인 되고자 했죠”
  • 황인옥
  • 승인 2019.07.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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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라다메스’역 6개월 투어
伊 “파바로티 닮은 목소리” 찬사
고전 캐릭터 180도 바꾸는 분위기
항상 ‘왜’ 질문하며 유연성 길러야
26일 리사이틀서 다양한 레퍼토리
권재희-리사이틀이
유럽에서 활약 중인 테너 권재희 리사이틀이 28일 오후7시30분에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다.

테너 권재희(39)가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뛰어난 몰입도로 극의 집중도를 높였다”고, 토리노 왕립극장이 제작한 오페라 ‘라 보엠’ 무대에서 “강력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진정한 푸치니 테너”라고 호평을 받으며 유럽 오페라 무대의 주류는 백인이라는 공식을 깨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유럽 활동 10여년간 이탈리아 주요 오페라극장 가운데 하나인 토리노극장 제작 오페라 ‘라보엠’을 비롯 ‘리골렛토’, ‘투란도트’, ‘아이다’ 등 다수의 오페라 무대 주역을 꿰차며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가 “과거에는 노래만 잘하면 됐지만 지금은 종합예술인을 요구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노래는 기본이고 캐릭터가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 소리의 색깔까지 담아낼 수 있어야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저는 그런 시대적 요구에 맞는 성악가가 되고자 노력해 왔어요.”

◇1년 만에 찾아오는 대구 공연

권재희가 오랜만에 대구에서 공연을 펼친다. 11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리는 대구오페라하우스 기획 ‘제14회 대구장애인돕기 자선음악회’와 26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리는 ‘권재희 리사이틀’이다. 이번 공연은 4년 전 국립오페라단 ‘루살카’로 국내 데뷔 무대를 가지고 지난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공식초청작 ‘돈카를로’에 출연한 이후 첫 무대다. 이번 단독 리사이틀에서 그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선율이면서 예술성도 갖춘 후기낭만가곡과 나폴리민요, 한국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등을 선사한다.

“테너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들로 리사이틀을 구성했어요.”

◇동양인 테너 한계 극복, 유럽 무대 누비다.

권재희의 유럽 진출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경북대 음대 재학시절 우연히 이탈리아 로마의 사설 아카데미와 지역 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기사를 보고 지원해, 1위를 차지하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유학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장학금과 후원금으로 떠날 수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도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다. 2009년 스타성악가 등용문으로 권위가 높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에 응시해 합격하고, 스승이자 은인인 세계적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를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또한 이 아카데미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앞에서 노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 무대로 바렌보임과 인연을 맺게 됐고, 이후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스타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스칼라 아카데미 갈라 콘서트에 세계적인 테너 주세페 필리아노티를 대신해 무대에 섰다.

오페라 무대 주역의 행운도 뒤따랐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의 10개 극장을 6개월간 투어하는 ‘아이다’에서 잇따라 주역인 라다메스를 맡게 된 것.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 수석 입학했던 그가 졸업도 최고 성적으로 마무리한 것. 유럽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가 “진정성 있는 소리”를 언급했다.

“‘소리는 이래야 한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면 테크닉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게 되죠. 그러나 그런 소리는 자기 소리와 거리가 멀어요. 이념화된 소리죠. 그것보다 가사나 극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와야 진정한 자기 소리라 할 수 있어요.”

◇인문학적 깊이를 품고 있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소리

다니엘 바렌보임의 “권재희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목소리를 가진 리릭(서정적인) 테너”라는 한 평과 라 스칼라 아카데미 10주년 기념공연에서 “파바로티를 닮은 목소리”라고 한 찬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색은 봄 햇살처럼 따사롭고 가을들판처럼 풍요로웠다. 특히 노래에 실어내는 짙은 감성은 그의 강점이다.

사실 호소력 짙은 감성과 진정성 있는 소리는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 노력의 산물이다. 권재희는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여행이나 연극, 전시회 관람 등 인문학적 토대를 쌓기 위한 일들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 그는 평소에 쌓은 인문학적 바탕을 노래와 연기로 승화한다. 깊은 소리의 바탕에 인문학적 토대가 있는 것. “시간이 나면 오페라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를 찾아서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작곡가의 의도 등을 알고자 노력해요. 연극이나 전시 관람도 소리의 깊이를 위해 자주 가곤 하죠.”

시대가 변하면서 고전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고 있다. 현재 유럽 오페라판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작품 속 캐릭터와 극의 내용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리콜레토’에서 합창단을 개구리로 대체한다든가,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를 살인자로 묘사하거나,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과거에서 현재로 바꾸는 식이다. 그가 이와 같은 변화의 시대에 성악가가 갖춰야 할 덕목이 ‘유연성’이라고 언급했다.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해요. 연출가나 지휘자가 ‘왜’ 그런 것을 원하는지 충분히 의도를 파악하지 않으면 감정이입이 힘들죠.”

◇유럽과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상대배역과의 합이 잘 맞는 공연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권재희. 그의 음악적 진정성은 유럽과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그는 현재 이탈리아 알리오페라(Aliopera) 매니지먼트, 미국 Robert Mirshack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독일 Silvana Sintow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한국 오엔엠 엔터테인먼트,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 정단원 등에 소속되어 세계 전역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도 음악과 삶을 둘이 아닌 하나인 진정성 있는 성악가로 살아가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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