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 그것이 경제입니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 그것이 경제입니다
  • 이대영
  • 승인 2019.07.10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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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경세제민’ 한자를 줄인 것
서양은 그리스어 ‘가정관리’서 유래
세종실록 “백성은 국가의 근본
경제는 백성이 하늘같이 여겨”
조선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쇠고기국에 쌀밥 먹일 것” 약속
박근혜는 靑에 이팝나무 심어
이명박도 경제적 낙수효과 제창
신택리지-이팝나무
이팝나무. 그림 이대영

 

 

이대영의 신대구 택리지 - (27) 진정한 경제란 뭘까?

지난 5월에 10일간 아내와 형제나라 터키(Turkey)로 여행을 다녀왔다. 터키(Turkey,突闕)란 기원전부터 8세기까지 우리와 같은 동이족(東夷族)으로 한반도 부여(夫餘), 동예(東濊)에서 살았던 돌궐(突闕)족이라고 했으며, 천신(天神) 당글리(檀君)를 믿었다. 지금도 밥(bap)을 주식으로 하며 특히 우리와 같이 기름이 흐르고 찰진 쌀(밥)을 좋아한다. 케밥(kebap)이란 오늘날 우리말로는 쌀밥, 옛말로는 겨밥(껍질만 벗긴 거친 밥)이다. 동이족만이 먹는다는 갓나물(겨자)도 먹는다.

그래서 그들은 형제의 나라(brother‘s country)라고 하면서 6·25전쟁 당시 파병규모 4위인 3만5천여 명의 청년들이 스스로가 자원해 참전했다. 오늘도 그들은 한국이라면 “우리가 남이가?”하면서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역사상에서도 수(隋)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수나라 궁궐을 반격해 원정 도중 수나라군을 회군시켰던 적도 있다. 고구려와 수차례 당나라를 협공했고, 특히 발해건국 때는 크게 기여했으며, 630년 발해가 당나라에 멸망하자, 634년부터 발해인들이 서쪽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다.


로마제국의 군마를 키웠던 도시 카파도키아(甲馬洞野, Kapadocia)에서는 BC 1만5천년경 인간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지하세상(Derinkuyu)과 동굴거주지(cave)를 현재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UNESCO에 등록된 반경 10km의 지하도시와 화산암벽(灰岩)의 동굴주택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봤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인간의 거주지는 두더지(mole) 혹은 개미(ant)로부터의 안식처(安息處)를 땅굴에다가 파고들어 살았구나. 여기에다가 토끼로부터 교토삼굴의 지혜를 배워 외침(外侵)과 폭정(暴政)을 피해서 도피처(逃避處)로도 땅굴로 이용하게 되었다.

AD 60년경 네로 황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재위연도 AD 54~68)의 기독교도 탄압을 피해 이곳 지하도시에서 1천200년대까지 살았던 생생한 모습이 상상된다.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은 까치나 쥐들의 둥지(nest)를 따라 움막집과 주택을 마련해서 수천 년을 살아왔다. 최근에는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소라(conch) 혹은 달팽이(snail)를 닮아 이동용 주택(mobile house)으로 일상으로부터 떠돌아 다시면서 피신처(避身處)를 마련하고 있다.

이렇게 삶터가 안식처, 도피처, 일터, 피신처로 변하는 동안 수렵채취사회에는 맹수맹금(猛獸猛禽)처럼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어 약탈경제(looting economy)가 번성했고, 농경사회가 들어서면서 집단생활, 노예생산사회가 형성되었다. ‘제국의 힘은 노예의 피에서 나왔다(The power of the empire came from the blood of slaves)’는 말처럼 통치수단으로 채찍의 설득력만이 통했던 채찍사회(whip society)였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대량생산체제가 도입되자 자본력에 따라 개미사회(ant society)처럼 노동자(일개미)와 자본가(여왕개미)는 생산계급사회(production class society)를 형성했다. 정보통신기술은 제3차 산업혁명을 초래하게 해 지식정보가 자본으로 등장했고,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거미경제(spider society)를 만들어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반도체(semiconductor)가 ‘산업의 쌀(rice of industry)’이 되어 각종 먹거리를 만들고, 로봇,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신하게 되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사람 취급도 기계 취급도 못 받을 박쥐사회(bat society)로 되어가고 있다.

냉혹한 경제현실, 특히 국제역학관계(International dynamics)가 작용되는 외교, 군사, 통상에서는 아직도 채찍의 설득력이 대단하다. 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에서 서로가 상대방을 향해서 ‘25% 보복관세(25% retaliation tariff)’라는 채찍을 날리고 있다. 아직도 약탈경제(looting economy) 혹은 전쟁경제(war economy)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으로 부상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있다. 틈만 나면 전쟁특수를 만들고 있다. 경제적 수단으로는 협상이라고 하나 약탈경제와 채찍설득(spoilage economy and lash persuasion)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우리의 국익은 적국의 피에서 나온다(Our national interest comes from the enemy’s blood)’는 슬로건이 보인다.

경제이론으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자유경제(liberal economy)가 있지만 강대국만이 글로벌화에 재량권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는 ‘보이는 주먹(visible fist)’을 날리는 신자유주의경제(neoliberal economy)가 주류로 형성되고 있다. 국제간 갈등해결에서도 19세기 이전에 있었던 로마제국, 몽고제국, 오스만제국 등은 침략전쟁을 해도 전후엔 반드시 관용이 존재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일본, 독일, 미국, 러시아 등의 제국들에게 관용이라고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대량학살(holocaust), 민족 학살(genocide), 인간 청소(human cleaning)와 같은 잔인성을 겁박의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의미

경제(economy)란 용어는 서양(西洋)에서는 그리스어 ‘가정관리’에서 유래했다. ‘가정(home)’과 ‘관리(manage)’의 합성어로 “경제적 사업의 관리(the management of economic affairs)”라는 용어가 1440년 최초로 나타났다. 의미에서는 검소(thrift), 관리(administration)를 포함하고 있었다. 1650년까지 크게 활용되지 않았으나,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의미는 ‘한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적 제도(the economic system of a country or an area)’였다.

한편 동양(東洋)에서는 중국 동진(東晋)의 갈홍(葛洪, 283~343)이 AD 317년 쓴 포박자(抱朴子)에 ‘천하를 자연섭리로 다스릴 뜻이 있다면, 백성을 도탄에서 구제해야 한다(經濟濟俗)’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수나라 왕통(王通, 580~617)의 저서 문중자(文中子)에선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길(道)이 있다면, 곧바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을 도탄에서 구한다(皆有經世之道, 爲經國濟民)’라는 말에서 위정철학의 핵심에 경제(經濟)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395년 조선건국 혁명가 정도전(鄭道傳, 1341~1398)의 경제문감(經濟文鑑)에서 국민을 도탄에서 구제하는 방안으로 대간(臺諫), 위병(衛兵), 수령(首領) 및 감사(監査)를 제도화해 경제구현방안을 구상했다. 오늘날 의미로는 ‘국가정치전반’을 의미한다.

1992년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대선참모였던 제임스 카빌( James Carville)이 ‘바보야, 국가정치는 경제야(It is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을 제시 할 정도로 국정에 최우선으로 경제를 중시했지만, 옛 위정(爲政)에서는 더욱 중시했다. 한 마디로 ‘백성에겐 경제(먹거리)가 하늘이다(食爲民天)’고 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선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고, 경제는 백성들이 하늘 같이 여기는 것이다(民惟邦本食爲民天)’라고 어록에 남겼다.

한서(漢書) 역식기열전에서 ‘국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나, 백성들은 경제를 하늘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고 적고 있다. 조선건국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로부터 2013년 박근혜 정부까지 ‘쇠고기 국에 하얀 쌀밥으로 배부르게 먹도록 하겠다’는 정치적 약속이 바로 경제였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그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표현으로 달성군 옥포 이팝나무 군락지에서 5m짜리 20년생 이팝(쌀밥)나무를 2013년 4월 9일 청와대 뜰에다 옮겨 심어놓았다.

우리의 선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경제지식 못지않게 해박하게 원리를 알고 있었다. 2010년 MB정부에서 제창했던 경제적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BC 150 년경 조착(晁錯)의 논귀속소(論貴粟訴)라는 보고서에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편익이 흘려 내린다(趨利如水走下)’라고 표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같은 바구니에 계란을 담지 말라(累卵之戒)’라는 속담은 기대수익(expected return)과 최소위험성(minimum risk)을 계산했던 1952년 미국 시카고경제학파 경제학자 해리 맥스 마코위츠(Harry Max Markowitz, 1927년생)가 ‘포트폴리오 선택이론(Theory of Portfolio Selection)’으로 바껴 1990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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