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심각해지는 한일 갈등의 해법
[이효수 경제칼럼] 심각해지는 한일 갈등의 해법
  • 승인 2019.07.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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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정치적으로 빚어진 한일 갈등이 무역전쟁으로 번질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한일 무역 전쟁이 발생하고 장기화되면, 한국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고, 일본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많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은 고도의 기술적 국제 분업 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한국은 핵심 소재나 생산 기반 장비를 일본으로부터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무역전쟁의 심도에 따라 첨단산업들이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단순히 특정 산업의 차원을 넘어 한국 경제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0대 기업 총수를 만나, “일본의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의 철회와 대응책 마련을 위해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양국의 경제에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더 이상 막다른 길로 가지 않길 바란다.”라고 했다. 그리고 단기적 대책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내 부품·소재·장비산업의 육성을 위해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겠다고 했다. 이런 접근은 필요한 조치이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일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경고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분야의 부품 및 소재와 같은 중간재는 수입대체 국가를 찾기도 쉽지 않고, 단기적으로 국산화하기도 어렵다.

한일 무역전쟁의 심각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반일 감정에 기초하기보다는 매우 냉철한 원인 진단과 국익을 위한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문제의 발단은 ‘위안부 문제 합의 파기’, ‘강제징용 피해자 피해 보상 판결’에서 촉발되었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는 불행한 역사에서 빚어진 심각한 인권유린 문제로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이지만,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랫동안 양국 사이에 갈등을 빚어 왔기 때문에 일방의 단순한 ‘합의 파기’나 ‘판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방적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국익은 물론,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사전에 매우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갖고 지혜롭게 접근했어야 했다. 양국 간에 오랫동안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문제를 일방적으로 처리했을 때 일본의 강력한 대응이 있을 것을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무역전쟁에 의해 국익의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지만 민족적 울분을 달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했다면 지도자로서 무책임한 것이다.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만에 하나 정치적 목적으로 했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불행하게도 전후 문제 해결에 있어, 일본은 독일과 너무나 다른 자세를 취해 왔다. 독일은 피해국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고 피해 보상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래서 독일은 다시 유럽의 지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 시민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바르샤바 볼스키 국립묘지를 방문, ”나치 독일이 폴란드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생각하면 부끄럼 속에서 몸을 수그립니다.“고 사죄했고, 메르켈 총리는 2009년 폴란드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설립한 ‘기억·책임·미래재단’은 강제 노역 보상 기금에서 2004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강제로 동원했던 유대인과 일반 노역자 13만 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진정한 용기와 사과,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새로운 협력과 번영의 길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잔인한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통석의 염’ 등 추상적 표현은 있었지만, 피해국이나 피해 당사자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베 총리는 전범들을 기리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자랑스럽게 방문하고, 역사적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끝났다“고만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 역사적 비극을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 지도자나 언론이 애국심에 호소하여 반일감정이나 혐한감정을 자극하여 양국 간에 치유하기 어려운 적대적 국민감정의 골을 깊이 파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훗날 또 다른 역사적 비극을 부를 씨앗이 될 수 있다. 양국 정부는 독일의 사례에 기초해서 양국 정부와 양국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해서 이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이 역사적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과 구체적 전략도 없이 새로운 정치적 이슈를 만들었고, 아베 수상은 정치적 문제를 경제적 보복으로 대응하면서 양국 기업과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모든 정치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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