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오방색’ 민족회화 새 지평 열다
‘강렬한 오방색’ 민족회화 새 지평 열다
  • 황인옥
  • 승인 2019.07.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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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 회고전…10월 20일까지 대구미술관
‘50년 화업’ 작품세계 조명
회화·드로잉 등 162점 선봬
토속·무속성 매개 방향 모색
민족 얼 녹여낸 독자적 화풍
한국 채색화 정체성 재정립
해질녘, Sunset, 1979, 수묵채색,  x140cm
박생광 작 ‘해질녘’.

박생광, 무속, 1981, 종이에 수묵담채, 66x68.5cm
박생광 작 ‘무속’.

박생광 작 '노적도'
박생광 작 ‘노적도’

‘이게 내꺼!’라고 외칠 수 있는 예술가가 얼마나 될까?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세계를 구축한 그들에게 세상은 ‘대가’라는 칭호로 존경을 보낸다. 대구미술관 박생광(1904~1985) 회고전에 걸린 작품 앞에 서면 ‘이거 내꺼’라는 단호한 외침이 메아리친다. 작가는 민족의 얼(뜻)과 채색, 그리고 전통과 현대기법의 조화라는 3요소로 독창적인 채색 한국화를 구축했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회고전은 박생광 화업 50년을 집대성한 전시다. 전시는 △민화에서 찾은 소재 △꽃과 여인, 민족성 △민족성의 연구 △무속성에서 민족성 찾기 등 4개의 소주제로 구성돼 있다. 박생광 특유의 독차적인 작품세계인 ‘그대로 화풍’을 꽃피우게 된 과정을 시기별, 주제별로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예술세계의 정수가 담긴 1970∼1980년대 작업을 주로 하면서 타계 직전의 작품까지 아우른다. 유작 ‘노적도’를 비롯 회화와 드로잉 162점이 해당된다.

그림은 1920년 진주농고 재학시절 일본인 미술교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면서 입문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일본 유학길에도 올랐다. 채색 한국화라는 작업의 방향성은 오히려 일본 유학 이후 본격화됐다. 그의 아호 ‘그대로’에 당시 그의 예술정신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유학 이후부터 사용했던 아호인 ‘그대로’에는 있는 그대로의 ‘인생’, ‘자연’, ‘예술’을 체험하고자 하는 뜻이 담겼다. 박생광은 ‘회화’나 ‘삶’에서 ‘그대로’의 가치를 녹여내려 했다. 누구의 그림이 아닌 우리의 회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찾고자 했던 것. ‘정체성 찾기’였다.

작가는 ‘민족성’에서 정체성을 추출하려 했다. 그 첫째 요소가 색채였다. 작가는 청·록·적·황·흑을 작품의 주된 색으로 사용했다. 대를 이어 전해온 전통문화와 민족정신을 전통색채로부터 찾으려는 시도였다. 사실 화려한 오방색은 함부로 접근하기에 부담스러운 색이다. 색이 품고 있는 강렬함을 화가가 이겨내지 못할 경우 색에 눌릴 공산이 크기 때문. 박생광은 화려한 오방색을 강인한 품격으로 구현하는데 탁월성을 보였다. 그의 축적된 내공과 자신감이 있어 가능했다.

오방색은 사찰이나 무속 등 토속적인 전통문화 전반에 사용됐다. ‘토속성’을 매개로 ‘민족성’을 찾고자 했던 초기 그의 관심사는 ‘민화’였다. 작가는 민화의 소재인 동물, 꽃, 식물을 통해 ‘민족적인 회화’를 모색했다. 주로 모란과 이브, 단군, 꽃과 여인 등을 소재로 사용했다. 이후 전통 민간신앙과 불교로 소재의 확장을 모색했다. 이 시기에 ‘청담대사’, ‘토함산 해돋이’, ‘단군’, ‘부처’ 등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불교를 소재로 다루던 시기에는 불교의 본산인 인도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타계하기 몇 년 전부터 그를 사로잡은 것은 무속이었다. 이 시기 ‘무속 시리즈’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작가는 기층민의 삶에 자리하던 무속신앙에 집중해 굿, 무당, 부적 등의 요소를 화면에 담았다. 이 시리즈는 박생광에게 큰 영광을 안기기도 했다. 프랑스 ‘그랑 팔레 르 살롱-85’에 초대된 것. 그는 프랑스에서‘게르니카’를 완성한 피카소에 비견되며 국제적인 조명을 받았다.

그의 독창성은 작업 기법에도 드러났다. 그는 특히 한국적인 원근법 구사에 열정을 할애했다. 굵은 주황색 테두리선으로 형태를 먼저 그리고 그 속을 색으로 채워가거나, 채도가 떨어지는 색은 멀리 배치하고 채도가 높은 색은 가까이 채색하는 식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채색기법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모색했다. 먹과 아교를 혼용하고, 종이에 먹물이 번지게 한 뒤 채색하는 등의 전통과 현대 기법을 혼용한 것.

전시 작품 ‘노적도’는 박생광이 추구했던 한국적인 회화의 정수에 해당된다. 죽음이 가까운 것을 예감한 그의 죽음에 초연한 태도가 ‘노적도’에 드러난다. 작품은 이렇다. 새빨간 적삼을 걸치고 고깔을 쓴 노인이 피리를 불고 있고, 그의 발아래는 악귀가 밟혀 있다. 미소가 번지는 노인의 얼굴에는 미련없이 이승을 떠나고자 하는 홀가분함이 묻어난다. 작가는 이 작품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타계했다. 이 때문인지 노적도 앞에 서면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간다. 그러나 내 그림은 영원히 살아 그대들 곁에 있을 것”이라고. 전시는 대구미술관2, 3전시실에서 10월 20일까지. 053-803-79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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