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집
그들의 집
  • 승인 2019.07.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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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저 먼 한라산 중턱
빼곡한 집집마다 어둠 자욱하다
바람 타던 깃발들
분화구 비워두고 다들 어디 갔을까
행 방 불 명,
평화공원 문패 단 그곳에 까마귀는 왜
제 눈알 파낸 부리 심어 두었을까
해묵은 시집 닮은 그곳에서
어린 신발 그리고 검정 냄새가 난다
어디에도 없는 붉음 퍼 나르는 어느 그믐밤
바늘구멍 찾는 이 있었을 거고
분화구 태우는 이 있었을 거다
몽롱한 주방 나태한 거실 해체하고
창문 하나 걸고 모자 모셔와
나머지는 허공으로 장식하는 자 있었을 거다
검정이 검음을 삼킬 줄 모르고
연기가 먼지 묻을 줄 모르고
녹슨 문패 너머 가려운 마당에서
피지 못한 그들 소리가 난다
그들 다시 돋고 피려면
안방 차지한 묵직한 그림자 걷어내고
얼마나 닦아야 할까
어디까지 파내야 할까

◇권순학=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과 『그들의 집』이 있고 저서로 『수치해석기초』가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기계IT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한국시인협회 및 한국지능시스템학회 회원이다.

<해설> 어느 해 추석날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간 사실을 심미적인 입장에서 쓴 시(詩)인 것 같다. 기행시는 자칫 상투성이 되기 싶다. 한데 시인은 그 상투성을 걷어내고 아름다운 시를 썼다. 여기에 시인의 역량이 엿보인다. 사전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동행이 많은 탓에 일정이 엇박자 나고 말았다. 한라산 중턱의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발견한 곳이 평화공원이었다. 그 평화공원에서 느낀 감회를 진솔하고 기묘하게 서술하고 있다. 해오름 위로 낮은 구름 자욱한 해질녘 그리고 까마귀 울어대는 황량한 한라산 중턱 어딘가에서 한참 헤맨 사연 등등…

그 시간 속 그들이 현재의 화자며, 미래의 자신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화자의 통렬한 반성이 따른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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