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부왕 유감
청년기부왕 유감
  • 승인 2019.07.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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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사회부장
2015년 4월 1일 대구시민센터 부설 동행위원회가 사회혁신가를 발굴해 매달 소정의 기금을 지원하는 사회혁신사업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기금은 2014년 경북대생 박모씨가 기부한 1억원이 종자돈이 됐다. 동행위원회는 전 대구시장, 전 경북대 총장, 전 대구상의 회장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지역대학 교수, 공인회계사에 윤종화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가 실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당시 보도됐다.

박씨는 2015년 7월 대구에서 첫 30대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에도 가입했다. 그는 당시 5년간 3억6천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고 2019년 2학기까지 총 360명의 학생 장학금을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다.

박씨는 그 전해 조성한 장학기금을 통해 각 50명씩 총 10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1억여원을 지원했다. 또 펀드, 주식으로 번 수익을 대구시민센터, 위안부 할머니 지원사업, 대학교 장학금 등에 수억원 씩 기부한 것으로 모 신문을 통해 소개됐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6년간 기부한 금액이 7억~8억원에 달하고 공동모금회 약정액을 더하면 1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랬던 박씨가 최근 사기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았다. 검찰은 박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었다. 박씨는 2016년 10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지인 A씨에게 높은 수익을 약속하며 13억9천만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이다. 재판부는 “언론에 소개된 장학사업을 위해 피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범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종잣돈 1천500만원을 400억 원대로 불린 것으로 잘못 알려져 ‘청년 버핏’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그는 판결직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아너소사이어티 46호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자격을 강제로 박탈당한 것은 대구지역 최초라고 한다.

남의 돈을 빌려서 사용하고 갚지 않았지만 좋은 일에 사용됐으니 봐주고 넘어가면 안 될까라는 생각도 들 법하다. 하지만 법원은 그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며 징벌을 내렸다.

이런 저런 세상사를 겪어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어떤 한 사람이 사기를 치기로 마음 먹으면 대부분 속아 넘어가는 것을 알게된다. 오랫동안 알았던 친구를 믿었다가 거액을 날리거나 또는 수많은 밤을 보낸 연인에게서도 속고 속는 일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기사를 쓸 때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과연 이 정보가 사실일까, 과장되거나 왜곡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대구시에서 있었던 한 축제의 생산유발효과 약 245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약 90억원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자세히 보면 생산유발이 된 것이 아니고 효과라고 돼 있다. 뭔가 의심이 들지만 달리 방도도 없다. 탐사 저널리즘으로 파고들기에는 이미 너무 게을러 졌다. 무책임하게 기사를 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지만 ‘모두 다 그러니까’라는 생각에 묻어간다.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로 사회혁신가 발굴사업을 실제 담당했던 윤종화 대구 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대표는 혹시 박씨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입장 표명을 할 생각이 없는지 묻는 기자에게 “사기로 모여진 돈인줄 전혀 알지 못했고 아마 시민센터에 낸 돈은 박씨 개인돈인 걸로 생각된다”고 했다. 사과를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이런 옳지못한 돈이 사용된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는 “기자가 너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박씨 돈으로 사업을 해온 이들을 굳이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잘못된 돈인줄 몰랐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만 1천 500만원이 400억원이 됐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너무 쉽게 믿었다는 부주의에 대해서는 누군가 반성의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씨와의 수많은 만남, 홍보 사진찍기 속에 진실은 묻혀 버렸다. 크로스 체크가 없는, 아니면 아주 약한 지식인 사회, 전해주는 정보에 숟가락만 얹는 언론의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서다. 아무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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