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반 피셔와 BFO
[문화칼럼] 이반 피셔와 BFO
  • 승인 2019.07.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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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지난 유월 말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다. 최정상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연주 대신, 합창으로 우리가곡을 부르는 것이었다. 세계적 명장 ‘이반 피셔(Ivan Fischer)’가 이끄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단원들은 공연에 앞서 일어 선채로 일부는 반주를, 일부는 노래를 불렀다.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헝가리와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뜻을 모아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는 이반 피셔의 말에 이어 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이 울려 퍼졌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애절한 노래에 많은 관객들은 오열에 가까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첫 곡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 서곡에 이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기 위해 등장한 조성진. 갑자기 공연장에는 엄청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과연 이런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가 있었던가? 과거에도 없었지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인해 생긴 조성진 신드롬은 기세가 수그러들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겸손함이 몸에 밴 청년의 튀지 않는 모습. ‘당타이 손’의 말처럼 동·서양의 특징 중 장점은 가지고 단점은 없는, 아주 드문 균형미를 갖추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아름답다고 할 만큼 잘 생겼으니---. 이윽고 연주는 끝났지만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는 끊이지를 않는다. 이반 피셔는 아예 무대 위 단원들 뒷자리에 떡하니 앉아 같이 박수를 치고 있다. 후일담이지만 “성진, 아무도 의식하지 말고 마음껏 앙코르를 하라”는 배려에서였단다. 그의 따뜻한 인간미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부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이다. 개인적으로 특히나 좋아하는 음악을 BFO의 사운드로 듣는다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도입부. 큰 강물과 같은 브람스의 음악을 이반 피셔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단정하게 풀어간다. 최근 떠오른 젊은 거장들과는 확연히 다른 컬러였다. 한마디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음악이었다. ‘야니크 네제 세겡’과 ‘파보 예르비’ 같은 거장들은 조으고 풀고, 키우고 줄이고 해서 너무나 현란하게 음악을 만든다. 반면 이반 피셔는 “특별히 내 식대로 곡을 해석하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해석은 관중에게 맡기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해 전달하는데 집중 한다”고 말한바 있다. 과연 35년이나 함께해온 BFO와 마에스트로는 세상을 관조 하듯이 담담히 풀어 나갔다. 물론 필요할 때는 사람의 넋을 빼 듯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시켰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품격이 가득한 브람스 1번이었다.

이반 피셔(알타이어족인 헝가리는 우리처럼 성, 이름의 순서다. 그래서 헝가리에서는 피셔 이반으로 부른다.)의 조국 헝가리는 중부 유럽의 약소국가다. 역사적으로 많은 질곡이 있었지만 지금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강국이다. 벨라 바르톡(Bela Bartok)이 친구 코다이와 함께 수 십 년간 헝가리 전역을 다니며 민요를 채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런 바탕위에 헝가리는 수많은 세계적 지휘자, 솔리스트를 배출했다. 유독 정상급 오케스트라만 가지지 못했는데 이반 피셔가 1983년 자신이 직접 창단한 BFO를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키워냈다. 이로써 헝가리는 음악적으로 더 단단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와 BFO사이에는 오늘날 귀감이 될 만 한 이야기가 있다. BFO가 2008 음악전문지 ‘그라모폰’ 선정 세계 오케스트라 9위에 오르기 에는 이반 피셔의 노력과 희생이 절대적 이었다. 이반 피셔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더 큰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BFO와 함께 작업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단원들의 폭넓은 자율적 활동을 권장하는 대신 노조를 허용치 않고, 재계약에는 이반 피셔가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음악적 완성을 위해 몰입과 헌신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최정상의 교향악단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반 피셔는 이번에 그만의 확실한 음악세계를 들려줌과 동시에 따뜻한 인간미까지 갖춘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와 함께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온 그는 2015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연주 전 “이 자리에 처음 온 시리아 인을 환영하자.”며 그들이 자유롭게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유럽의 이민 정책을 개선하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거장이 만들어 낸 세계는 이처럼 위대하고 또한 아름답다. 그의 행보는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만 위대함에 가까이 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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