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집단 무의식)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집단 무의식)
  • 승인 2019.07.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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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교수님은 못하시는 게 뭐예요?”

사람들이 한 번씩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사실 ‘으쓱’ 하기보다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가 볼 때 난 잘하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잘하는 게 많아 보이는 모양이다. 솔직히 못하는 건 보여주지 않고 잘하는 것만 보여주니까 그렇지, 내가 얼마나 못하는 게 많은데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강의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사람이기도 하고, 때론 뚝딱뚝딱 목수이기도 하고, 작은 텃밭에서 오이랑, 방울토마토, 상추를 키우고, 동물을 키워내는 농부이기도 한 그런 내가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생각해도 나는 어떤 일을 하든 곧잘 해내는 편이긴 하다. 처음 하는 일이라도 그냥 쉽게 해내는 편이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겠다. 그 이유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나는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은 집단 무의식이란 걸 소개했다. 인간에게 전해 내려오는, 인류에게 오랜 시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생각, 풍습, 감정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무의식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그것이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 한국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바로 한(恨)이라는 정서다. 대대로 대한민국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약탈 등 많은 전쟁이 있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고향을 잃었다. 나라 잃은 설움. 가족 잃은 설움, 배고픈 설움. 가난의 설움, 배우지 못한 설움이 우리 선조들 속에 오랜 시간 자리했었을 것이다. 그 설움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다음 세대로 흘러왔을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우리에 이르러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그 설움의 정서가 우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예전에 TV에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아이에게 구슬픈 민요를 들려주고 반응을 살펴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슬픈 민요를 듣고 아이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어떻게 그 정서를 알 수 있을까. 그건 한국사람 속에 있는 한(恨)이라는 집단 무의식의 이유일지 모른다.

융이 주장한 집단 무의식에 내가 공감하는 이유의 또 한 사례는 문명도 없고 이웃도 없이 아주 극소수의 가족단위 정도의 사람만이 살고 있는 열대우림의 원시부족의 삶을 보면서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삶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배운 적도 없고, 뭔가 기록되고 보관된 정보도 없었을 터인데 그들 선조들이 가졌던 비슷한 풍습과 비슷한 신화가 있고, 비슷한 사냥 도구를 사용하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다. 분명 우리 속에 무언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내 속에 많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내가 노래를 좋아하고 또한 그럭저럭 제법 노래를 하는 이유는 우리 선조 중에 누군가 노래 잘하는 소리꾼의 선조가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선조의 피가 지금 내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 잘하는 선조도 한 분 정도는 계셨을 것이고, 시(詩)나 글을 잘 쓰는 선조도 분명 계셨을 것이 분명하다. 무언가를 잘 만드는 손재주 좋은 선조도 계셨을 것이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선조도 한 분정도는 계셨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있겠지만.

우리 속에 수많은 먼저 살다 간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들의 경험이 내 속에 생생히 저장되어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과정으로 이곳까지 와있는지, 어디쯤 와있는지만 제대로 알아도 사람은 온전히 기능할 수 있다.

겁낼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미 우리 속에 누군가 해본 일일 것이고, 또한 잘 해왔던 일일 텐데. 믿고 앞으로 나아가 보자. 잘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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