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 씨실·날실 엮어 대대로 이어온 ‘베짜기’ 체계적 전승·보존
[안동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 씨실·날실 엮어 대대로 이어온 ‘베짜기’ 체계적 전승·보존
  • 김광재
  • 승인 2019.07.25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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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 삼베와 차원이 다른 안동포
전시관엔 故 박봉금 할머니 ‘15새’ 위엄
옛 여인들 가족 부양한 고단한 작업
전승교육관서 뛰어난 기술 계승·교육
베짜기 체험프로그램 운영 10년째
전통놀이하며 ‘소중한 추억’ 쌓고
다슬기 줍기 등 다양한 체험도 가능

 

안동포마을전경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 전경. 사진 왼쪽 도로 건너편에 안동포타운이 조성돼 있다. 전영호기자
 
베틀
안동포전시관에 전시된 베틀.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안동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

‘안동포’는 말 그대로 안동 지역에서 생산된 삼베라는 뜻이지만, 단지 같은 물건의 생산지역을 구분하기 위한 이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에서 생산되는 안동포는 보통 삼베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른 물건’임을 뜻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삼베와는 기술과 품질이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안동에서는 삼을 삼기 전에 외피를 벗겨낸 ‘생냉이’로 짠다. 다른 지방에서 쓰는 ‘익냉이’는 삼을 삼은 다음에 잿물을 넣고 삶아서 외피를 벗겨낸 것이다. 삼은 삼는다는 것은 삼을 가늘게 찢은 삼 올을 일일이 손으로 연결해서 긴 실을 만드는 과정을 말하는데, 생냉이는 올 끝과 끝을 이을 때 무릎에 대고 비벼야 하기 때문에 무릎에 피멍이 들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익냉이로는 6새 이하의 거친 삼베를 만들지만 생냉이로는 보통 6~9새의 고운 삼베를 짤 수 있다. 금소리 마을 앞 안동포 전시관에는 경북도무형문화재 제1호 안동포짜기 기능보유자 박봉금 할머니(2016녀 별세)가 짠 보름새(15새) 안동포가 전시돼 있다. 날실 80올을 1새라고 하는데 숫자가 클수록 섬세한 섬유가 된다. 6새는 480올, 9새는 720올의 날실이 36㎝ 폭 안에 들어간다. 손으로 실을 만들고 베틀에 앉아 15새를 짰다는 사실이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베짜기는 전통시대 여성들에게는 매우 고된 일이었다. 밭일과 부엌일을 다 한 뒤에, 10여 단계의 노동으로 이뤄지는 베짜기를 감당해야 했다. 여럿이 모여 두레삼을 삼을 때는 ‘잠아잠아 오지마라’라고 하는 잠노래나 시집살이노래를 부르며 고단함을 잊었다. 하지만 그 노동을 통해 가족들을 입히고, 자식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이러한 베짜기 기술을 보존 계승하고 있는 마을이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이다. 202가구 35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마을에는 현재 40~50가구에서 베를 짜고 있다. 고령으로 기력이 달려 그만둬야겠다는 할머니들이 많다. 그래도 마을 앞 안동포타운 전승교육관에서는 안동포짜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문화재 할머니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안동포짜기 기술 전승에 가장 큰 걸림돌은 들이는 수고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안동포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한 필에 100만원, 200만원이라고 하면 비싸다고 느끼겠지만,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농사를 지으면서 베를 짠다면 1년 내내 해도 2필을 짜기가 어렵다. 들에 일하러 나가지 않는 할머니들이 꼬박 베짜기에만 매달린다고 해도 1년에 3필 정도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다. 안동포 5필이 드는 수의 한 벌에 700만 원이라고 할 때, 한 사람이 농사도 짓지 않고 2년간 노동을 한 대가로는 너무 적다. 거기에 이런 저런 부대비용을 제하면 실제 수입은 더 적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겐 베짜기 보다는 돈이 되는 농사일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안동포는 꼭 필요한 사람들만 찾는 귀한 물건이다.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생산량을 쉽게 늘이지도 못한다. 현재 금소리에서는 1년에 200여필 정도 생산되고, 안동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을 포함해도 300필 정도다.

금소리 안동포마을에서는 안동포짜기를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노력과 함께, 안동포짜기를 비롯한 다양한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부터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안동포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안동포마을에서 껍질 벗기기 등을 직접 체험하고, 문화재 할머니의 베틀시연을 관람했다. 안동포마을 정보화센터에서는 체험용으로 대마 껍질을 따로 말려서 보관해 두고, 찾아오는 체험객들이 연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 전국 각지에서 학교 단위로 찾아온 학생들은 반 대항 ‘동체싸움(차전놀이)’을 하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금소리 마을에서 70년대까지 행해졌던 동체싸움은 원래 참나무로 동체를 만들었으나, 학생들을 위해 굵은 대나무를 이용해 가벼운 체험용 동체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의 단체 이동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금소리 안동포마을을 찾는 학생 단체 체험객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지금도 문화재 할머니와 함께 하는 안동포 체험, 안동포 주머니 만들기를 비롯해, 떡만들기, 다슬기 줍기, 사과따기 등의 체험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토마토, 멜론, 딸기 등 농작물 체험은 작황이나 시장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사전에 금소리 안동포 정보화마을로 문의해서 조율을 하면 된다. 금소리에서는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집도 여러 곳 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길쌈마을 한옥펜션과 경함정, 계와고택, 금포고택, 만초고택 등 마을 내 고택에서도 숙박객을 받고 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이웃친지들과 함께 전통의 향기를 느끼며 한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길쌈체험, 다슬기 줍기 체험 등을 색다른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마을 앞 도로 건너편 강변에 조성된 안동포타운은 안동포전시관, 특산품매장, 안동포 짜기 시연장, 안동포공예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안동포의 역사와 우수성 등 풍부한 정보을 얻을 수 있다.


지현기·김광재기자


 

<우리 마을은>

"자라나는 아이들에 우리전통 물려주고파" 김점선 안동포 정보화마을 사무장

“삼베를 짜는 타 지역에서 안동포를 배워보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첫째가 생산되는 대마의 질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마을이 토질과 기후가 대마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거든요. 타지에서 생산되는 대마는 굵고 속껍질도 거칠어서 우리 마을처럼 곱게 짤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어져 온 기술에도 차이가 있어서, 우리마을 삼을 가져가서 6새 삼베를 짜려고 했다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김점선 안동포 정보화마을 사무장은 안동포의 우수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소중한 전통을 보존하고 후대에 이어주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그나마 전승교육관에서 문화재 할머니들에게 베짜기 기술을 배우는 젊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그는 사라져 가는 전통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체험을 하러 와서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길안천이 안동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에요. 다슬기 줍기 체험도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인데, 체험객들의 일정상 주로 한낮에 강에 나가요. 그 시간에는 다슬기들이 숨어버려 한 사람이 겨우 서너 마리 잡고 돌아오게 되니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정보화센터에서 할머니들이 전날 주워온 다슬기들을 사서, 체험을 시작하기 전에 강에 미리 뿌려놓기도 했어요.”

그는 금소리 안동포마을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높다랗게 닦아놓은 4차선 도로가 마을과 들판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바람에 두 곳이 분리된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내려다 보면 논밭이 훤히 보였는데 지금은 도로에 가로막혀, 아이들이 동체놀이를 해도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안동포타운도 도로 밑 통로를 통해 마을 연결돼, 같은 금소리인데도 남의 동네 같다고 한다.

지금 금소리 마을에서 가장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사무장은 마을 근처로 지나갈 계획이 되어있는 고압선 이야기를 꺼냈다.

“도로는 전통문화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 부족했던 1990년대에 건설됐으니 그렇다고 하지만, 마을 주변으로 고압선이 지나가는 것만은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을 지키자고 하고, 금소생태공원도 조성해 오토캠핑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은데 곡 이쪽으로 고압선이 지나가서야 되겠느냐는 게 마을 주민들의 생각입니다. 조금 둘러가더라도 마을에서 보이는 풍경이나 분위기도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가볼만한 곳>
 
병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서원


지난 7월 6일 ‘한국의 서원’이 우리나라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이번에 포함된 아홉 곳 중 안동시에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두 곳이 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에 선생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선조 7년(1574)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됐으며 선조 8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산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이었는데,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서애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은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며, 특히 만대루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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