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한 생명력 넘치는 강아지풀
푸릇한 생명력 넘치는 강아지풀
  • 황인옥
  • 승인 2019.07.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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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단展 수성구 갤러리단
우연히 반하게 된 잡초와 교감
풋풋함·순수미 담은 수묵화
짙어진 추상적 기법 돋보여
나순단작가
나순단 작가가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순단작-강아지플
나순단 작 ‘강아지풀’.

먹빛으로 표현한 연초록 강아지풀은 흑색일까? 녹색일까? 십중팔구 육안으로는 흑색, 마음으로 녹색으로 인지한다. 관건은 작가의 역량. 흑색이라는 현실태 이전에 가능태인 녹색으로 인지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짓는 추동력이 작가의 역량인 것. 이때 필요한 전제가 ‘작가가 대상의 본질에 얼마나 밀착되었느냐’다. 밀착이 농염할수록 육안으로 인식되는 색은 그야말로 무의미해진다.

나순단이 먹으로 표현한 강아지풀 그림에서 넘실되는 연초록 물결을 감지했다면 그녀는 역량있는 작가일까? “강아지풀과 교감하면서 느껴지는 내면의 파장을 강아지풀에 담아낸다”는 그녀의 말에서 적어도 강아지풀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확고한 의지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내 감정을 강아지풀의 기운을 빌어 표출하려 하죠. 저와 강아지풀의 지극한 교감상태를 꿈꾸죠.”

작가 나순단은 강아지풀을 한지에 먹으로 표현한다. 한국화 기법으로 강아지풀을 그리는 작가는 나순단이 유일하다. 강아지풀을 작업의 소재로 선택할 당시만 해도 거창한 이유 따윈 달지 않았다. 대학원 재학 시기, “무엇을 그릴 것인지”를 고민하던 과정에 지도교수가 ‘일상적인 소재’를 권고해 선택한 소재였다. 2015년의 일이었다. “어린시절 강아지풀을 좋아했지만 그 이후로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죠. 그러다 작업 소재를 찾을 즈음에 우연히 보도블록 사이로 비집고 올라온 강아지풀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죠”

흔히 강아지풀은 잡초나 들풀로 취급된다. 맛깔나는 식용이나 대단한 약재와는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우아한 자태를 즐길만한 세속적인 아름다움도 갖추지 못해서다. 하지만 강아지풀에는 단순 잡초 이상의 강렬한 한 방이 있다. 들풀치고는 꽤나 대중적이기 때문. 이름없는 들풀들 사이에서 강려한 존재감을 발하는 강아지풀의 매력을 묻자 “첫 개인전에 15점을 전시했는데 12점이 팔려 놀랐다”고 했다. 강아지풀의 대중친화적인 이미지의 힘이었다.

“사람들이 강아지풀 그림에 의외로 반응을 보였죠. 아마도 강아지풀에서 유년시절의 빛바랜 사진 속 자신의 얼굴에서 풍기는 풋풋함과 순수함을 본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초기에는 구상으로 표현했다. 들이나 물가에 핀 강아지풀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시기에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할까를 고민했죠.” 반추상이 나온 것은 2017년이었다. 강아지풀의 본질, 즉 기운을 담아내려는 시도 중에 추상이 가미됐다. 추상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와 강아지풀 사이의 교감. 교감지수가 높을수록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 “제 감정상태가 강아지풀과 조우했을 때 균형점을 만나면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추상이 한층 짙어진 것은 올해부터다. 생명력, 친근함, 향수 등 강아지풀 특유의 정서들을 강화된 추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추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감정선. 작가의 감정이 강아지풀의 본질과 만나는 지점에서 물오른 추상이 생명을 얻는다. “기쁨, 슬픔, 노여움, 고요 등의 마음상태를 일필휘지로 표현해가고 있어요. 강아지풀은 물론 보이지 않는 바람과 공기의 흐름까지 섬세하게 터치하고 싶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가의 작업방식은 의식에 가까웠다. 작업 전 불교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의식을 빠트리지 않았다. 마음을 정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작가에게는 평화가 깃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다. 하지만 추상이 짙어진 올해부터 작업방식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

“마음을 평화롭게 안정시킨 후에 작업을 해야 한다는 근거없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어느순간 그것이 아닐 수 있겠단 깨달음이 왔죠. 지금은 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작가가 “동서양의 기법이 어우러져 만든 합주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한지에 먹, 선 등 동양화의 요소를 중심으로 하지만 아교나 덧칠 등의 서양적 요소도 병행한다는 이야기다. 작가의 강아지풀 작품이 완연한 동양화일 수 없는 이유다. “제 작업에 동·서양 구분은 무의미하죠.” 나순단 상설전이 작가의 작업실 겸 갤러리로 쓰이는 갤러리단(대구 수성구 수성로)에서 열리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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