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에서 본 개인의 시각차… 칸 개막작 ‘누구나 아는 비밀’
적당한 거리에서 본 개인의 시각차… 칸 개막작 ‘누구나 아는 비밀’
  • 김광재
  • 승인 2019.08.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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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찾으며 밝혀지는 숨은 이야기
인물들의 설득력 있는 대립과 입장
이란 그림자를 벗어난 보편적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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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가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인 스페인의 시골마을에 도착한다. 그녀는 20년 전 쯤 아르헨티나의 사업가 알레한드로(리카도 다린)와 결혼하면서 고향을 떠났는데, 이번 여행에는 큰 딸 이레네와 어린 아들 디에고만 데리고 왔다.

신부 집에서 열린 결혼 피로연에서 가족과 이웃들은 술과 춤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지만 사람들은 촛불과 핸드폰 불빛 아래서 피로연을 이어간다. 라우라의 오랜 친구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파코(하비에르 바르뎀)은 농장에서 발전기를 가져와 불을 밝힌다.

밤늦게 파티가 이어지던 중 라우라는 술에 취해 먼저 자러 들어간 이레네의 방문이 잠긴 것을 발견한다. 문을 열어보니 이레네는 사라지고, 과거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납치사건에 대한 신문 스크랩들이 침대 위에 놓여있다.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면서 경찰에 알리면 이레네를 죽이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라우라는 혼비백산한다. 그녀의 가족들과 파코가 이레네를 찾는 과정에서, 숨기고 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짐작은 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점점 드러나게 된다.

제71회 칸 영화제 개막작인 ‘누구나 아는 비밀’(2018)은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매끄럽다.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 부부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와 카메라, 사건 전개 방식 등 흠잡을 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어바웃 엘리’(2009),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세일즈맨’(2017) 등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들을 본 관객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영화를 봤다면 다소 싱겁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영화는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호기심만 준비해 오면 되겠다. ‘누구나 아는 비밀’에도 등장인물들 각각의 입장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농장주와 일꾼의 계급적 대립이나 지난 일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등이 드러난다. 하지만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보여주는 선에서 그친다.

그는 지금까지 관객들을 늘 딜레마에 빠뜨려왔다. 영화 속 사건들은 일상의 자잘한 실수나 습관 혹은 선의에서 비롯되거나, 가해자도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이거나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렇게 책임을 돌릴 곳이 마땅치 않은 사건인데 등장인물들이 받게 되는 쓰라린 고통은 절실하게 전달된다. 감독은 판단을 내리기 곤란한 지점으로 관객들을 몰아놓고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그 질문 앞에서 관객들은 당혹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현실을 너무 피상적으로 보고 판단해온 것을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란 출신 감독이 연출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합작영화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들과 촬영감독이 마드리드에서 40분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스페인어로 촬영했다. 파라디 감독의 영화 중 외국 제작자로만 이뤄진 작품으로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파리를 무대로 프랑스어로 촬영됐으나, 주인공들은 파리에 사는 이란과 아랍 출신 사람들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란 사회, 이란 사람, 페르시아어에서 완전히 벗어난 첫 작품이 셈이다.

이런 제작 환경과 설정의 변화가 이번 영화가 전작들과 상당히 달라진 원인이 되었겠지만, 파라디 감독 스스로가 이란 사회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이번 영화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뛰어난 솜씨를 가진 스토리텔러임을 보여주었으나, 한 번 필터를 거친 남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인 ‘누구나 아는 비밀’(원제를 직역하면 ‘누구나 안다’)는 이 영화보다 전작들에서 그가 보여준 것들에 걸맞은 이름일 수도 있겠다. 그는 누구나 알면서도 회피해온 인간의 윤리적 딜레마를 관객들이 직면하도록 만들어온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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