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농소면 샙띠마을] 백로·왜가리 노니는 마을, 봄엔 자두꽃향기 만 리까지…
[김천 농소면 샙띠마을] 백로·왜가리 노니는 마을, 봄엔 자두꽃향기 만 리까지…
  • 김광재
  • 승인 2019.08.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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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수호신 장승 수호신 '격상'
새떼 날아드는 사진 핫스팟
4월이면 온 마을 하얀 꽃동산
경운기 꽃마차 타고 축제 즐겨
 
김천시 농소면 봉곡1리 샙띠마을. 김천 자두꽃축제와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영호기자
김천시 농소면 봉곡1리 샙띠마을. 김천 자두꽃축제와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영호기자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김천 농소면 샙띠마을 


김천시 농소면 봉곡1리 샙띠마을은 새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샙띠마을로 검색을 하면 멋진 백로 왜가리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자두꽃축제가 끝나고 나면 새를 찾아온 사람들이 새벽부터 망원렌즈를 들고 몰려든다. 마을 이름 샙띠도 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예부터 마을 뒷산에 왜가리와 백로가 살고 있어 새터·봉현(鳳峴)·봉곡(鳳谷)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과거 벼농사를 많이 지었던 시절에는 논을 갈아 엎으면 새들이 개구리 미꾸라지를 먹으러 날아와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앞 율곡천에도 물이 잦아들었고, 논은 대부분 자두밭 복숭아밭으로 바뀌어 봉곡리에는 새들의 먹이감이 많지 않다. 그래서 새들은 산 너머 감천으로 가서 주로 먹이활동을 하면서도 샙띠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다. 더 안전하게 새끼를 키울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새를 해꼬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들도 잘 알아서 조금의 불편함을 참고 눌러앉았다고 해도 좋겠다. 옛날부터 주민들은 새가 많이 날아오면 마을이 흥하고 적게 오면 쇠한다는 속설을 믿고 새를 지극히 보호했다고 전해지니까.

 

두부체험
두부체험.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김해 김씨 김충량(金忠良)이 남원에서 옮겨 와 정착했고, 이후 화순 최씨 최세갑(崔世甲)이 조마면 신안리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김해 김씨, 화순 최씨, 동래 정씨가 모여 살았다.

봉곡리에는 조선시대 역참제도에 따라 마을에 길을 안내하는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장승배기가 ‘고두바장승걸’로 마을의 당산이 되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 동제는 정월 초이튿날에 마을 뒷산 상탕과 하탕의 소나무에서 제사를 지내고, 장승걸에서도 간단히 제사를 모셨다 한다. 장승은 10년에 한 번씩 소나무를 이용해 제작했는데 1960년대 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주민들 간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62년에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장승을 세우기느냐 마느냐를 놓고 투표를 해 간발의 차이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70년대 또 다시 갈등이 벌어지면서 더는 장승을 세우지 않게 됐고, 1990년대에는 동제도 지내지 않게 됐다고 한다.

샙띠마을의 과거을 이야기할 때 새때와 장승을 빼놓을 수 없다면, 김천 이화만리 자두꽃축제와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을 제외하고는 오늘의 샙띠마을을 상상할 수도 없다. 인근 마을의 아이들을 길러냈던 옛 봉곡초등학교는 주민들이 권역개발사업으로 정부지원을 받아 리모델링,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재탄생 시켰다.
 

이화만리녹색농촌체험마을-조형물1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의 조형물. 아이들이 새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다.

자두꽃 향기가 흐드러지는 4월이면 자두꽃축제장도 이곳에 마련된다. 새로 얻은 ‘이화만리’란 마을 이름은 자두 꽃향기가 만 리까지 퍼진다는 뜻이다. 2011년부터 온마을이 하얀 꽃동산으로 변하는 4월 초에 마을주민들이 자두꽃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행정적 지원이 끊겼을 때에도 마을주민들의 힘으로 축제를 계속 이어왔을 만큼 주민들의 긍지가 높다.

‘이화의 행복한 향기 시민에게 물들다’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제9회 축제는 자두꽃길 걷기, 경운기를 이용한 꽃마차 체험, 자두꽃 버스킹, 폴라로이드 사진 증정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의 시설은 전국 어느 체험마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완비돼 있다. 족구장, 분수 물놀이장 등을 포함한 3천평의 마당과 70대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 음향시설, 빔프로젝터 등이 갖춰진 회의시설, 5인실~30인실까지 펜션형 숙소 7실과 야영장, 실내 실외 체험장, 정자 등도 갖춰져 있다. 부대시설로는 백자의 전통을 잇고 있는 김대철 사기장이 운영하는 도자기전시장과 전통가마, 수영장과 민박시설이 있는 자두체험농장과 사과체험장이 있다. 1백여명의 동시 식사가 가능한 식당은 상시로 운영되고 있다.
 

이화만리녹색농촌체험마을
폐교된 봉곡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잔치음식체험, 잼만들기체험, 기타음식체험, 농산물수확체험, 잔치놀이체험, 기타체험 등으로 구분된 모두 40여종의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 연중체험으로는 도자기 그림그리기, 물레성형체험, 도자기시계만들기, 천연비누만들기, 두부만들기, 황토염색체험 등이 인기가 많고, 계절체험으로는 자두따기, 고구마·감자캐기, 모내기체험, 김장담그기, 사과따기가 대표적이다.

예전에 비해 가구수는 많이 줄었지만 이 마을에는 노인 한두 분만 사는 가구는 많지 않다. 김천혁신도시, KTX 김천구미역이 차로 5분 거리이고, 김천까지 15분 구미까지 20~25분으로 출되근이 가능해 젊은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의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 김종용 대표는 “봉곡 화목회 등 마을 젊은 사람들의 모임이 대구은행 등 결연기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과 연계해 독거 어르신을 돕는 등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는 옆도 좀 돌아보면서 살자는 데에 의기투합한 것이지요” 라고 말했다.

최열호·김광재기자

 

십시일반 뜻 모아 폐교 활용 체험시설 조성, 김종용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 대표

 

김종용 대표

“저는 봉곡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고향 떠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봉곡초등학교 35회 졸업생이고, 저희 어른도 이 학교 나오셨어요. 이 학교가 폐교가 된다고 하니까 안타까웠습니다. 주민들도 자신이 다닌 학교가 폐교 되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가만히 두고볼 수만은 없었지요. 마을 주민 49명을 주주로 5억 7천여만원을 마련해서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교육부에서도 주민들에게 우선권을 주어서 우리 법인이 학교를 인수하게 됐지요.”

김종용 이화만리 녹색농촌체험마을 대표는 봉곡초등학교가 만들어 질 때에도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았디고 한다. 그때 마을 어른들이 심었다는 리기다 소나무도 운동장 한쪽에 우뚝 서있다.

봉곡초등학교에는 봉곡1, 2동, 용암 1, 2동 아이들이 다녔는데, 많을 때는 전교생이 300~350명이나 됐다고 한다. 교적비에는 1948년 10월 2일 개교하여 2천10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08년 3월 1일 폐교됐다고 새겨져 있다.

예전에 교장실이나 서무실로 쓰였을 것 같은 농촌체험마을 사무실에서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복도에서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와 웃음이 들려왔다. 방학을 맞아 교회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이 이곳으로 수련회를 왔다.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다시 주민들이 힘을 모아 학교를 체험시설로 바꿨고, 그곳에서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사무실에 걸려있는 행사표 칠판에는 4월에서 8월까지 행사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9월 이후는 듬성듬성 하지만 곧 채워질 것이다. “이화만리 농촌체험마을은 위치와 시설이 좋고 체험프로그램이 다양해 기관, 단체, 학교, 교회 등 전국에서 많이 찾아오십니다. 앞으로 평생교육, 진로체험과 특색있는 프로그램들을 더 보강하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녹색농촌체험마을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입구에 세운 조형물에서는 새들과 아이들이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가볼만한 곳

 

고방사
 

◇고방사

봉곡2리 사실마을 뒤 백마산에 있는 신라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안내문에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됐다고 적혀 있다.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한때는 건물만 45동에 이르는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36년(인조 14년) 적묵당, 설선당이 중건되고, 1656년(효종 7)에 청원루가 새로 지어졌다.

이 절에도 빈대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1719년(숙종 45) 중창 때에는 지금의 위치로 절을 새로 옮겨 지었는데, 본래는 현재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유명한 약수가 있었으나 빈대가 많아서 보광전만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나머지 전각은 모두 태웠다고 한다.

1981년 관음전과 삼성각·향로실·사천왕문·범종각·청원루 등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고 보광명전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고방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지난 2005년 보물 제1854호로 지정받았다. 1688년에 민원이 수화승을 맡았으며 죽총, 경찬, 각림 등 다른 화승들도 참여했다. 민원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화승이라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으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이 불화가 유일하다. 17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적 가치가 높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보광명전 목조삼존불 뒤에 걸려있었으나 진품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복제본이 걸려있다.

근래 세워진 것을 보이는 보광명전 앞 3층 석탑은 연화좌대 위에 올라앉은 특이한 모습이다. 옹호문을 지나 보광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워낙 가팔라서 계단 아래에서도 탑이 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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