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야은밤실마을] ‘길재 선생 길’ 구석구석 숨은 벽화찾기 재미 ‘쏠쏠’
[구미 야은밤실마을] ‘길재 선생 길’ 구석구석 숨은 벽화찾기 재미 ‘쏠쏠’
  • 배수경
  • 승인 2019.08.01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건이 작가-삼성전자 뜻 모아
2014년부터 본격 벽화작업
마을 주민들도 자발적 참여
옛 이야기 오롯이 담긴 그림
아이도 어른도 웃음꽃 ‘활짝’
작업 끝나는 10월엔 축제 열어
 
야은 길재 선생의 학문적인 업적과 후학 양성의 뜻이 서린 야은 밤실마을 전경  전영호기자
야은 길재 선생의 학문적인 업적과 후학 양성의 뜻이 서린 야은 밤실마을 전경. 전영호기자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구미 야은밤실마을 

골목길 동백나무 그늘 아래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있다. 오며가며 ‘귀엽다’는 말과 함께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강아지 벽화는 사연을 알고보면 더 애틋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세상을 떠난 강아지를 그리워하던 집주인의 요청에 의해 탄생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야은밤실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고려 말 자신이 섬기던 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키던 세명의 학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그리고 야은 길재 선생을 우리는 ‘삼은’이라고 부른다. 이 중 야은 길재 선생의 학문적인 업적과 후학 양성의 뜻이 서려있는 곳이 바로 이곳 도량동 밤실 일대이다. 마을 골목길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가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밤실벽화마을로도 불린다.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는 사당, 야은사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는 사당, 야은사

벽화마을로 변신하기 전에도 밤실마을은 주민들의 정이 살아있는 마을, 주변에 명문학교가 많아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로 여겨져왔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뒤처지게 되면서 골목길이 많고 오래된 집이 많은 마을은 점차 젊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랬던 마을이 스토리를 담은 활기찬 마을로 변신하게 된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미마을이야기
마을 어르신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그림은 바로 꽃이다.

아이의 학교와 가까운 곳을 찾아 이 마을에 정착한 백건이 작가는 마을의 교육환경은 우수하지만 상대적으로 마을의 주거여건이 낙후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재능기부를 통한 벽화 작업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물감 값만해도 수백만원에 이르는 등 여러 가지 여건상 성사가 되지 못하다가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삼성전자가 2014년 사회적 공헌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을벽화 사업후원을 결정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벽화작업이 시작된다. 벽화의 주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공모를 통해 정해졌다.

‘벽화가 처음에는 예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흉하게 변하지 않을까’라는 마을주민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모두가 환영하고 동참하는 마을사업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미마을이야기-아줌마
벽화는 책임작가와 마을주민, 그리고 봉사자들의 힘으로 완성된다.

아무리 CCTV를 달고 경고문을 붙여도 개선되지 않던 골목길의 쓰레기도 뜻밖의 곳에서 해결책이 나왔다. 고양이가 쳐다보고 있는 그림을 그렸더니 자연스럽게 쓰레기가 사라졌다. 마을이 예뻐지면서 주민들의 의식도 점점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마을을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해 꽃을 가꾸기 시작하고 마을에서 가장 쓰레기가 많이 버려지던 곳에는 마을 쉼터를 만들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오신 어르신들은 벽화그림을 보면서 ‘예쁘다’,‘곱다’를 외치고 서서히 ‘우리집에도 그려달라’는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구미마을이야기-벽화33
밤실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녹아있는 벽화길.

마을 주민들의 스토리를 담은 벽화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손자 손녀가 있는 집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을 그리고 앞서 말한 강아지 그림도 그렇게 그려졌다. 꽃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꽃그림을 그린다. 목말타기 등 어린 시절 즐겨하던 놀이나 옛 마을 풍경 등 추억을 떠올릴만한 그림들도 그렸다. 집에만 있던 어르신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즐겁다며 쉼터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골목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주민들의 정이 살아있는 밤실마을만의 문화도 만들어진다.

구미마을이야기-벽화
집주인이 사랑하던 강아지가 그려져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야은밤실마을의 벽화는 총 3개의 코스로 이루어졌다. 도산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이어지는 1코스는 ‘길재 선생 이야기길’이다. 아이들은 이 길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길재 선생의 학문과 효심에 대해 배우게 된다. 마을 카페이자 벽화마을 안내소를 겸한 카페 ’다락‘을 따라서는 2코스인 ‘배움과 나눔의 길’이 이어지고, 3코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밤실 사람들 이야기길’로 꾸며졌다. 골목길을 따라 구석구석 숨은 벽화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크릿가든이라 이름붙여진 골목길에는 트릭아트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전국 곳곳에 벽화마을이 많지만 야은밤실마을의 벽화가 특별한 것은 누구 한 사람이나 하나의 단체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에 있다. 도량동주민센터, 금오종합사회복지관,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대기업,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누구랄 것 없이 앞장서서 만들어낸 것이다.
 

구미마을이야기-야은벽화
도산초 담장에 그려진 야은 길재 선생 이야기길.

그동안 벽화작업은 해마다 4월부터 10월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책임작가와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함께 해왔다. 그림을 위한 밑작업은 주민들과 봉사자들이, 그림의 스케치는 책임작가가 한다. 이후 채색은 봉사자들이 맡아서 한다. 처음에는 색깔 지정도 다 해줬지만 이후 자율성을 부여했더니 더욱 의미가 있는 그림이 탄생했다.

예비사회적기업인 ‘다락’카페도 마을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고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벽화마을 해설도 모두 70대부터 80대까지의 마을 주민이 수년째 맡아서 해오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벽화마을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미리 복지관으로 전화를 해 예약을 하면 된다. (금오종합사회복지관 054-458-0230)

2017년부터는 야은밤실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이웃이 함께 하는 마을 모둠활동도 열심이다. 손뜨개, 시쓰기, 오카리나 등 모둠활동을 통해 쌓은 연주실력과 작품은 매년 그해의 벽화작업이 끝이 나는 10월말 마을주민들이 함께하는 축제에서 선을 보인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동안 이어져온 기업의 후원은 끝이 났지만 야은밤실마을의 벽화작업은 마을주민, 복지관, 주민센터가 힘을 모아 계속 진행중이다. 최규열·배수경기자

 

“아이에겐 옛 이야기를, 어른에겐 향수를”, 백건이 야은밤실마을 책임작가

 

 
백건이 책임작가
백건이 책임작가
한국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는 백건이(49) 작가는 마을에 벽화가 그려질 때부터 지금까지 6년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책임작가로 함께 하고 있다. 벽화작업을 총괄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마을에 실제 거주하는 주민이라 애정이 남다르다. 삼성에서 후원을 하던 4년간은 평일 2회, 주말 1회 일주일에 3번씩은 꾸준하게 마을 벽화그리기 작업을 해왔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에는 작업을 한다. 벽화를 그리는 날은 운영하고 있는 작업실 겸 갤러리카페의 문을 닫고 오롯이 마을 벽화작업에만 전념을 한다.

“벽화는 ‘허락받은 낙서’라고도 할 수 있죠. 금방 결과가 눈에 보이는 점도 매력적이고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쉽게 그만 둘 수가 없는 일이예요.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하고 있으면 마을 어르신들이 시원한 음료도 내어주시고 비오는 날은 부침개도 구워주시는데 이 일을 어떻게 멈출 수가 있겠어요.”

처음에는 아들에게 골목길을 마음껏 뛰어놀던 유년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야은밤실마을만의 특별한 벽화작업의 매력에 빠져 힘들어도 이 작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했던 옛 시절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지나온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마을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볼만한 곳

 

지산샛강공원-표지석
 

◇지산샛강 생태공원

지산샛강 생태공원은 도심에서 자연의 생태를 즐길 수 있어 체험학습장으로 인기다. 접근성이 좋아 인근 주민들의 저녁 산책을 위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구미공단 조성으로 물길이 줄어 습지로 방치되어 있다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공원으로 재탄생한 지산샛강 생태공원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갈대, 겨울에는 고니떼 등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샛강 전망대에 올라 철새들의 비상을 감상할 수도 있다. 특히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가시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수생식물과 습지생물은 물론 멸종 위기의 수달과 고니도 만나볼 수 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