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인간군상 ‘나무 정령’ 이입
얽히고 설킨 인간군상 ‘나무 정령’ 이입
  • 황인옥
  • 승인 2019.08.0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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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신강호展 10일까지
나무 본연 형태 그대로 사용
관계 문제 연결 방식으로 풀어
다양한 인체 형상 포개서 은유
신강호 전시작
신강호 전시작.

재료가 허를 찔렀다. 흔히 나무조각 재료로 한껏 여문 통나무를 최고의 몸값으로 치는데 조각가 신강호는 보잘 것 없어 누구도 관심을 두지않는 버려진 나뭇가지를 조각의 재료로 사용한다. 땔감 말고는 더 이상의 용처(用處)가 없는, 생명을 다하거나 효용가치가 낮아 베어진 나무들이다. 조각 방법도 허를 찌르기는 마찬가지. 껍질을 벗긴 가는 나뭇가지 여러 개를 조합해 사람 형상을 완성한다. 통나무에 드로잉을 가하고 형상을 따내는 일반적인 조각 방식과 결을 달리했다.

또 하나의 차별화 지점은 완성된 형상이 초현실적이라는 것. 비현실적으로 가늘고 큰 키를 한 외형이 흡사 동화 속 캐릭터를 닮아있다. 초현실의 판타지다.

이 작품은 봉산문화회관 자연설계전에 초대된 조각가 신강호의 ‘링크(LINK-사람)’인데, 작가가 그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조각한 초현실적 인물들을 “나무 정령”이라고 명명했다. “나무 속 혼(魂)을 불러냈어요. ‘나무’라는 자연과 작가인 저(사람)을 연결해주는 나무정령이죠.”

신강호는 주제어인 ‘링크(LINK)’를 시각적 어법으로 구현한다. 작업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LINK’를 서술해왔다. 정확히는 ‘관계의 연결’이다.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던 작가의 성향이 작업으로 연결됐다.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본능적으로 스트레스 요인을 작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죠.”

작업 초기의 재료는 PVC 파이프였다. 구멍 낸 PVC 파이프 조각들을 연결해 사람이나 사물의 형상을 만들었다. 사람과의 관계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LINK)이라는 방식으로 풀던 시기였다.

이후 작업에 나무에 사람 형상을 조각했다. 개잎갈나무 판재에 달리는 사람, 오체투지상, 좌우나 앞뒤로 허리를 젖힌 사람형상, 천수관음상 등을 새기고 두세 겹으로 형상들을 포개 하나로 붙였다. 레이어(layer)였다. 겹쳐진 형상은 사각나무틀에 반입체 형태를 취했다.

“틀은 창이나 동굴에 대한 은유였어요. 여전히 제 안에 있는 강박증이 틀 속에 갇힌 형태로 드러났죠.”

나무가 조각 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고 부터다. “인간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답이 자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무조각을 시도했다.

나무를 재료로 쓰면서 마음이 비워졌다. 자연(自然)은 최대화하고, 인위(人爲)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조각의 어법도 변했다. 통나무에서 형태를 뽑아내던 방식과 달리 자연이 주는 나무형태 그대로 사용해 나무정령의 몸을 완성했다. 여기에는 작업 방식의 변화 이상의 의미가 더해져있다. ‘수용’적 태도다. “인간관계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편안해 졌어요.”

창작물은 예술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예술가의 내면이 일그러지면 창작물도 일그러지고, 내면이 고요하면 창작물에도 고요가 스민다. 신강호의 ‘연결-사람’ 연작에 표현된 나무정령들에게서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춤을 추는 등의 정령들의 행위에서 즐거운 흥취하저 묻어난다.

작가가 “더 이상 관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이제는 관계를 맺는 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지 않아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이게 됐죠.”

작가의 조각에 중심을 잡는 것은 선(線)이다. 선(線)으로 시작해 선(線)으로 완결점을 찍는다. ‘나무 정령’의 몸을 이루는 인체 하나하나가 선들로 구성됐다. 선의 요체다. 작가가 ”조각과 설치의 중간“이라고 표현했다. 선이 조각이 아닌 설치로 확장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 것.

“조각에는 ‘내가 이렇게 예쁘게 깎았으니 예쁘게 봐줘’라는 심리가 깔려있어요. 그러나 가변적인 오브제 개념의 설치는 관람객의 해석을 좀 더 열어두죠. 그 중심에 선이 있어요.”

촉이 민감한 관람객이라면 작품 속 ‘그림자’도 놓칠 수 없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드러워진 나무정령들의 그림자에서 나무정령들의 영혼이 오버랩되는 것같다. 작가가 “그림자는 일종의 회화”라고 했다. “신비로운 느낌을 최대화하기 위해 설치할 때 각도에 신경을 쓰게 되요. 그림자가 나무정령의 신비로운 느낌을 배가하는 기제로 작용하니까요.”

신강호와 함께 이상헌, 김성수, 김현준, 권효정이 초대된 봉산문화회관 기획 ‘자연설계(自然設計)’전은 10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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