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여행의 매력
[문화칼럼] 여행의 매력
  • 승인 2019.08.0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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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내가 읽은 여행 서적 중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최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행의 이유? 사람은 언제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산다. 그러나 여행은 오롯이 현재를 살게 한다. 목적지에 무사히 가야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또한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는 오늘 당장의 일을 해결해야 하는 현재의 시간 속에 살게 한다. 매우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나 역시 일상에서는 후회와 걱정의 상념 속에 살지만 어디론가 훌쩍 길을 떠나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생각의 공간까지 거기에서 벗어나 여유와 자유를 가지게 된다.

특히나 불확실성과 불편함이 있는 여행지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더 깊게 하게 된다. 나에게는 몽골이 그런 곳이다. 몽골 여행의 매력은 길 위에 있다. 흔들림이 있는, 이동의 경로인 길 위에서는 특히나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초원의 나라답게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맛은 각별하다. 같은 풍경이 계속 펼쳐지는 듯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지 않다. 음악에서 무한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에 때때로 우리는 열광한다. 몽골의 초원을 달리노라면 문득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세히 바라보면 늘상 같은 풍경이 계속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길옆에 핀 야생화, 변화무상한 구름의 모양 그것을 무심히 바라보는 것 또한 매우 각별한 즐거움이다.

누군가는 몽골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좋다. 라고 하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거기에는 초원이 있고 바람이 있고 별이 있다. 그리고 사막도 있다. 사막에 가본사람은 안다. 그곳이 왜 사막인지. 사막에는 끝없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의해 사막이 형성된다. 모래언덕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부는 바람에 얇은 모래막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바람소리 속에서도 언덕을 스치며 날아다니는 모래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그락 사그락 거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노라면 무아의 경지에 들 수 있다.

그리고 사막의 밤에 운이 좋으면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날이 흐리거나 달이 뜨면 볼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날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는 우리가 어릴 때 시골에서나 보던 그런 별무리를 볼 수 있다. 남북으로 선명하게 띠를 두르고 있는 은하수, 그 끝자리에 위치한 북두칠성 등 책에서 배우던 별자리들이 선명히 빛나고 있다. 밤하늘 가득 거대하게 펼쳐진 별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우주의 시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 가운데 외로이 서있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작고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검은 하늘을 온통 뒤덮은 별들 아래에서는 누구나 욕심을 버리게 된다.

초원에 자리한 게르에서의 하룻밤은 매우 낭만적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인근 테를지 국립공원 내의 캠프는 현대식으로 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몇 백 킬로 이상 떨어진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 여름에도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한기가 올라온다. 화장실, 샤워장도 매우 불편하다. 때로는 전기도 하루 두 시간, 따뜻한 물도 그 시간에만 나온다. 하지만 대자연 속의 잠자리는 이런 불편함을 상쇄시키는 대단한 매력이 있다. 저기멀리 발아래 초원이 자리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기암절벽이 웅장하게 서있다.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캠프를 감싼다.

여행은 항상 뒤 늦게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여행지에서는 시큰둥하게 반응 했더라도 일상에서는 그것이 따뜻하고 아련한 감성으로 되살아난다.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날만의 특별한 기운, 느낌이 있다. 멀리 길을 떠난 그곳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날씨, 바람 그리고 햇살이 일상에서 툭 튀어 나올 때, 여행지의 모든 추억과 감상이 스미어 나오게 된다. 그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이것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또다시 길을 떠나게 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맛보려 하지 않는다. 그냥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편이다. 가능하면 욕심내려 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보고 즐기는 여행보다 비울 수 있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은 평화롭다. 비우는 여행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다. 비우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더 충만하게 채워진다. 그것도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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