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여행하듯
  • 승인 2019.08.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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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우리나라도 이제는 여행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다. 휴가 때는 물론이거니와 추석, 설 명절에도 고향대신 해외로 여행을 나가는 분위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은 체험 위주의 여행 보다는 주요 도시나 문화재 중심으로 구경을 하고 오는 관광이 많다. 관광과 여행이 비슷해 보이나 차이가 있다.

관광은 영어로 sightseeing이다. 즉, 구경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관광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시점에서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3자의 시점으로 그곳의 상황들을 구경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여행 travel은 어원이 travail(노동, 고통, 출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행은 고통과 같다. 부딪치고 깨어지고 상처가 나는 행위가 여행이고 바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 그곳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이다. 한자로 여행을 살펴보면 旅行(여행)은 나그네 여(旅)와 갈 행(行)자의 합성어이다. 즉, 나그네가 되어 이곳저곳을 가본다는 말이다.

관광과 여행의 또 다른 차이는 관광은 목적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여행은 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먼저 관광은 목적지에 도달해야 시작할 수가 있다. 즉,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하여서 관광이 시작되고, 베트남 다낭에 도착하여 관광은 시작된다. 반면 여행은 목적지보다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여행은 출발하는데 의미가 더 있다. 누가 차 태워서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발로 각자의 목적지(알 수 없지만)로 향해 가고 있는 원정대와 같다.

본인은 패키지여행 보다는 자유여행을 더 좋아한다. 몇 년 전 일본 현지인의 집에 초대되어 머물렀던 10일간의 여행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이 사는 집 2층에 기거하면서 그들이 사는 골목길을 걷고, 그들이 이용하는 슈퍼마켓을 이용하며 짧게나마 일본인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예전 패키지로 유럽여행을 가서 경험한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많이 남는다. 하나의 큰 아쉬운 장면이 있는데 10여 일의 패키지여행 중 지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차에 실려 주요 관광지를 옮겨 다니며, 조금씩 지쳐갈 무렵 크로아티아의 한 골목에서 거리 연주자들의 음악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어울려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몹시 흥분되었다. 하지만 나는 30초도 그곳에 머물지 못했다. 나를 부르는 일행의 소리 때문이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버스를 타고 빨리 다음 도시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아직도 그날의 아쉬움이 내게 깊게 남아있다.

본인과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여행을 많이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그들의 삶속에 들어가 그들이 먹는 일상의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며 그들의 삶속의 일부가 되어 볼 수 있다는데 장점이 있다.

여행은 속도도 매우 중요하다했다. 속도와 여행의 만족도는 ‘반비례’한다. 속도가 느려질수록 더 깊게 삶 속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자전거보다 걷는 여행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너무 빠르게 살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느리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보이고 꽃이 보인다.

여행이 우리 삶과 많이 닮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삶이라는 여행.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여행객처럼 이 지구별을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모두 여행자들이다. 그래서 삶도 여행하듯 해야겠다. 이 땅에 와서 한 발짝 떨어져 구경만 하다가 한 세월 다 보내서는 안 되겠다. 삶 속으로 깊이 뛰어들어야겠다. 뛰어들어 그 속에 푹 잠겨 보아야겠다. 아픔도, 기쁨도 직접 맛보아야겠다. 더 느리게 걷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경험하며 여행하듯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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