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양산을
남자도 양산을
  • 승인 2019.08.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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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낮 최고 36도인 대프리카 아침출근길은 홍희에겐 양산이 필수다. 작고 까만 색 양산을 구입한 지 3년째다.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양산없이 햇빛이 피부에 닿으면 따갑다. 작은 양산아래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공기가 후덥지근하지 않다면 양산만 있어도 훨씬 체감온도가 내려간다. 여자들도 양산을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올해는 작년여름만큼 뜨겁지는 않다. 작년여름, 햇볕이 송곳처럼 머리를 찔렀다. 직장동료들은 양산 쓴 사람에게 한 사람씩 달라붙어 점심을 먹으러다녔다. 양산 필요성을 못 느꼈던 여자들도 양산을 사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알아보기 시작할 정도였다. 남자들은 맨 머리로 거리를 다녔다. 짧은 머리위로 내리꽃히는 태양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모자라도 쓰면 덜 뜨겁겠지만, 머리가 망가질까 모자를 쓰지 않았다. 간혹 신문지나 부채로 해를 가리며 바쁘게 걷는다. 그들도 자신처럼 양산을 쓰고 다니면 훨씬 시원할텐데 하는 안타까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중에도 분명 양산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잇을 것이다. 양산이 여자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양산을 언제부터 썼는지는 잘 모른다. 서양화 조르주 쇠라의 1884년~1886년작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면 양산은 아주 오래부터 일상화가 된 것 같다. 귀부인들이 불편해 보이는 둥글게 부풀어오른 드레스를 입고 장신구처럼 양산을 손에 들고 있거나 쓰고 있었다. 집 밖을 나갈 때 꼭 챙기는 양산은 햇빛도 가리고 사람도 가리는 역할을 한 것 같다. 남자들은 모자를 쓰고 있는데 여름에 모자를 쓰면 머리에서 땀이 더 난다. 그 작품 훨씬 이전부터 양산은 여자의 전유물이었던 것 같다.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관습·행동 따위의 양식을 전통이라 한다. 좋은 전통도 있고 좋지않은 전통도 있다. 좋지않은 전통은 후대에 의해 서서히 변화되거나 없어진다. 양산을 여자만 쓴다는것도 전통처럼 굳어져있다. 남자들이 양산을 쓰고싶어도 남들의 시선때문에 못 쓸수도 있다. 패션을 선도하는 남자연예인이 멋스럽게 양산을 쓰며 멋과 시원함이라는 두 가지를 보여주면 인식이 달라지지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양산의 필요성을 느끼는 ‘뚜벅이’가 아니므로 굳이 그런 도전을 않을 것이다. 햇빛을 손으로. 신문으로 가리며 걷는 남자들에게 양산을 씌워주고 싶었다. 머리위에 나무그늘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동료남자분께 용기있게 양산을 쓰고다녀보시라고 권유도 해보았다. 웃어넘겼다. 작년의 일이었다.

올해 변화가 생겼다. 아침 출근길 큰 횡단보도에서 양산을 쓴 두 명의 남자를 보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당당하게 양산을 받쳐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현명해 보였다. 무늬가 거의없는 단순한 양산을 쓰고 있었다. 직장동료인듯 서로 누가 사 주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따가운 햇볕대신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몇명의 남자들의 자발적인 변화로 인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올해 5월부터 대구시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양산 쓰기 운동’ 캠페인을 벌여왔다고 한다. 시에 따르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양산을 쓸 때 주변 온도는 7℃ 정도, 체감온도는 10℃ 정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양산에 의해 물리적으로 자외선이 차단되어 피부질환이나 피부암 예방에도 도움을 주기도 한다. 대구시는 양산이 그동안 ‘여성용 제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남성들에게 외면받아왔다며,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한 블로그에는 마음같아서는 양산을 쓰고 싶은데 남자가 양산을 쓰면 이상할까요? 라며 묻기도 한다. 귀찮아서 쓰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양산을 쓰고 싶다면 ‘양산=여성용’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뜨거운 태양대신에 시원한 그늘을 맛볼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서서히 변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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