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도시 만들기, 나눔과 배려
따뜻한 도시 만들기, 나눔과 배려
  • 승인 2019.08.20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우울한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북한이탈주민) 여성과 6살짜리 아들이 숨진 체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 지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두 달째 수돗물이 끊겼는데도 인기척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긴 검침원과 아파트 관리인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그동안 보편적 복지제도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과잉복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려면 최소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공한다.

이보다 앞선 29일에는 부산 해운대구 한 빌라 1층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경찰은 수년 전부터 혼자 살던 이 여성이 뚜렷한 직업 없어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독사란 가족·이웃·친구 간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혼자 살던 사람이 사망한 후 통상 3일 이상 방치됐다가 발견된 경우를 말한다. 이 사건들로 인해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생활을 촘촘하게 챙기는 것이 가능한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해 준다.

니얼 퍼거슨은 <광장과 타워>에서 세계 역사는 오래된 권력 위계에 의해 통치된 방식에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압축성장의 시대를 주도했던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의 역할을 보완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조밀하게 엮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자선과 기부활동이 아닐까.

로버트 퍼트넘은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시민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하면서 쓴 책 <나홀로 볼링>에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볼링 인구는 증가한 반면 볼링 리그가 감소하는 것은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실질적으로 혼자 볼링을 치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성장이나 혹은 물질적 복지가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회생시켜주면서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적 자본을 통해 다시 서로서로 사회적 연계를 맺어야 미국 사회의 ‘공동체가 소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자선과 기부활동을 사회적 자본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자선과 기부활동으로 이뤄지는 사랑, 돌봄, 자선, 배려, 나눔, 보살핌 등의 가치가 저평가된 원인은 무엇일까?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지만, 세상의 평가기준을 화폐라는 렌즈로 판단하는 경제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비화폐적 영역에 속하는 이들 가치는 낮게 평가되어 왔다.

미국 자선운동계의 대부인 브라이언 오코넬은 자선활동의 방안으로 ‘손 빌려주기 운동’과 ‘5% 기부운동’을 제시했다. 손 빌려주기 운동은 자발적 봉사활동을 더욱 확산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자는 캠페인을 말한다. 또한 5% 기부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목회자들이 사례비 5%를 기부해 청년 실업 극복, 위기 가정 긴급 구호, 반찬 나눔 등을 주요 사업으로 내걸고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자선과 기부활동은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감이 있지만, 오히려 보통사람들의 참가율이 더 높다.

특히 2003년 8월에는 9·11테러 발생일을 자선과 봉사의 날로 지정하자는 의미에서 ‘원데이스페이(One Day’s Pay)운동’이 발족했다, 아마도 9·11테러 기념일을 그저 슬픔에 젖어 지내는 날이 아닌 봉사와 자선을 통해 이웃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자선의 날로 만들자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따라서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내부갈등을 지적하고 비판하지만 의외로 건강한 것은 일반 시민들의 사회연대의식이 강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수많은 NGO와 자선단체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자선사업은 많은 기부자들이 성취감을 얻고 즐기는 일이고,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기본 의무이므로 그러한 의무 수행을 통해 비로소 그 사회의 주인이 된다는 인식이 깊이 깔려 있다. 그동안 자선과 기부문화는 장학재단이나 종교단체에 편중된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박물관, 문화예술단체, 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막스 베버는 주어진 소명(calling)을 다한 나에게 신이 준 은총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했다. 따뜻한 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나눔과 배려가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