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칼스루에 단상斷想
[문화칼럼] 칼스루에 단상斷想
  • 승인 2019.08.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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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우리는 공연장을 제작 기능을 갖춘 곳인가 아닌가로 구분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작이란 주로 오페라, 발레 작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유럽의 좋은 극장들은 자체 제작한 오페라와 발레 작품을 중심으로 가을부터(또는 초겨울부터) 이듬해 초여름까지 시즌 내내 공연한다.

그들은 어떻게 제작 극장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일전에 독일 칼스루에(Karlsruhe) 시를 다녀왔다. 독일 서남부 바덴 주의 주도인 이곳은 인구 30만 정도의 소도시(?)다. 매년 여름 약 25만 명의 관객이 찾는 음악 축제인 Das Fest, 세계 4위의 박물관에 랭크된 전시·미디어 센터 ZKM, 세계적 공과대학인 KIT 그리고 연방대법원과 칼스루에 궁전 등 많은 자랑거리가 있지만 역시 역사가 300년이 된 바덴국립극장(Badisches Staats Theater)이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 내 5위권 극장으로 평가 받는 이 곳 역시 오페라와 발레를 중심으로 시즌 내내 자체 제작한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야 구미(歐美)의 권위 있는 극장들과 대동소이 하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을 가진 칼스루에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이 공연장에는 무려 7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그리고 발레단과 행정인력까지, 30만이라는 인구에 비교해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잘 갖춰진 시스템과 적극적 재정 지원 하에 매일 매일 창작에 매진한다. 대단한 수준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만 그들이 만든 모든 공연이 세계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매진사례다. 또한 다소 아쉬움이 남더라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내준다. 이런 전폭적인 지지야 말로 이 극장이 존재하는 가장 큰 힘이요 또한 존재의 의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극장에는 완성된 예술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시스템도 잘 되어 있어서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과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제도도 완비 되어 있다. 예술대학과의 협업체제, 해외의 유망주를 발굴하여 교육시스템을 통한 무대진출 등 다 익은 과실로만 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새싹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시간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진정성이 그들의 힘이라고 본다.

한국은 세계적 아티스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예술의 강국이다.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 한국 성악가가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말한다. 세계적 콩쿠르 본선 진출자 중 한국 성악가가 너무 많아 한 때 일종의 장벽을 친 적도 있을 정도다(일부 국가의 일이긴 하지만). 유학을 거치지 않고도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클래식 시장에서도 한국은 놓칠 수 없는 매우 큰 시장이다.

이정도면 한국인은 예술에 있어서 타고난, 그리고 이들을 잘 교육 시킬 수 있는 시스템과 무대까지 갖춘 매우 드문 나라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예술에 있어서 제작 국가인가 아니면 소비 국가인가 라고 양분해서 본다면 답은 후자 일 것이다.

한국과 같은 예술 소비국가의 특징 중 하나는 관객의 눈높이가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관객의 선택은 언제나 옳지만 그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최고가 아니면 선택받지 못한다. 이런 살벌한 시장에서도 우리 예술가들은 살아남고 있다. 구미의 극장처럼 집약된 기능을 갖춘 시스템 하에서 일할 수 있는 터전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창작열은 식은 적이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들을 존경하지 못할 때 그들은 더 이상 예술을 계속할 힘을 잃을지도 모른다.

독일 역시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기에는 재정적 압박이 존재한다. 이러한 위기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꿈을 마음껏 펼 수 있는, 제작극장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칼스루에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예술가에 대한 한없는 존경. 이런 따뜻한 마음이 예술적 힘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17년의 임기를 마치고 칼스루에 극장의 발레단 감독이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의 발레단 역사를 중심으로, 떠나는 감독에 대한 온갖 스케치들을 가득담은 화려한 책자를 멋지게 만들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감독 부부가 바캉스 복장으로 모두에게 안녕을 고하고 떠나는 모습을 담았다. 사람에 대한 예의, 배려 이런 것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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