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설화로 내려온 기묘한 일
재주 뛰어난 광대패 통해 조작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 등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는다. 단종을 겁박하여 왕위를 자신에게 선위하게 하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성삼문 등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꾀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돼 참수됐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세조가 말년에 피부병으로 고생한 것에 대해서도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침을 뱉은 자리에서 종기가 생겼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세조는 불교를 숭상해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흥복사를 원각사라 개칭하고 도성 안 제일의 대사찰로 중창했다. 불교에 심취한 효령대군(세종의 형)과 관련해 여래가 나타났다거나 사리가 분신했다거나 꽃비, 상서로운 구름, 이상한 향기 등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자주 나타난다.
또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거둥할 때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 가마가 지나가도록 해서 정2품 벼슬을 내렸다거나,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자승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이 세조의 피부병을 낫게 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실록이나 설화에 나타난 이야기들이 세조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지배층이 만들어서 퍼뜨린 ‘가짜뉴스’가 아닐까 하는 발상에서 출발한 영화다. 폭군, 간신으로 역사에 남을 것을 두려워한 권력자들이 재주가 뛰어난 광대패를 시켜 기이한 일들을 조작해 소문을 퍼뜨렸다는 설정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명분 없는 쿠데타로 왕좌를 빼앗고 조카, 동생, 사육신을 죽인 잔인한 군주를 하늘이 내려준 왕, 하늘이 보살피는 왕으로 백성들이 믿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풍문조작을 기획한 영의정 한명회 역은 손현주가 맡았고, 풍문조작단의 리더 ‘덕호’ 역은 조진웅이 맡았다. 세조 역으로는 박희순이 출연했다. 고창석이 풍문조작단의 기술 담당 ‘홍칠’로, 김슬기가 영업책이자 음향 담당 ‘근덕’으로, 윤박이 미술 담당 ‘진상’으로, 김민석이 재주 담당 ‘팔풍’으로 출연했다. 또 잔악무도한 공신 홍윤성 역은 최원영이, 덕호의 스승 ‘말보’ 역은 최귀화가 맡았다.
정통성과 정당성이 취약한 정권이 신기한 이야기를 지어내 대중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으려 한다는 줄거리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로파간다라고 하면 나치의 괴벨스나 냉전 시대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 기원은 아마 권력이 처음 탄생할 때까지 거술러 올라갈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건국신화나 설화들도 그러한 지배층의 욕망이 대중들에게 받아 들여져 지금까지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성공적인 것은 세조 당시의 기이한 이야기들이 조선 시대의 첨단 특수효과 기술로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발상까지만이다. 이미 여러 편의 팩션 역사극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그 이상 것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저렇게 해서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면, 그 영화는 코미디 영화로는 벌써 절반의 실패다. 관객들은 웃을 준비를 하고 극장을 찾아왔는데, 영화는 관객들로부터 찬탄이 섞인 웃음을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진지 모드’로 만들어 버리는 셈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갈등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져서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김광재기자